대한민국 사상 첫 원정 16강이란 대업이 이뤄냈다. 16강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음고생이 심했을 캡틴 박지성을 비롯한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허정무감독 이하 코칭스태프에게도 고맙다는 말. 그리고 새벽까지 함께 응원한 붉은악마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경기는 끝났고, 그토록 바랬던 16강에도 진출했다. 그럼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축구를 흔히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VS나이지리아>의 경기는 한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 했다. 그만큼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장면이 너무나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후반 24분 경 동점골을 내준 뒤, 나이지리아의 공세가 이어질 때마다, 심장마비란 이럴 때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슴을 졸이고 또 졸였다.

한국 16강, 심장을 멎게 할 아찔하고 감동적인 경기!

시작은 좋지 못했다. 박주영의 완벽한 패스를 이청용은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반면, 차두리의 방심으로 나이지리아 미드필더 우체에게 골을 헌납했기 때문이다. 뒤에서 따라온 선수를 발견 못한 차두리의 실수였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른 시간에, 너무나 쉽게 상대에게 골을 허용했다. 선수들도 골을 헌납한 뒤, 꽤 당황한 듯 했다.

이후 몇 번의 찬스를 맞기는 했으나 투박한 마무리로 실패로 돌아간 반면, 우체는 두번째 골찬스를 잡았다,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나온 것. '만약 그것이 들어갔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위기 뒤에 찬스. 기성용의 프리킥을 이정수가 온몸(?)으로 넣었다. 헤딩슛을 하려다 발로 넣은 것, 이정수의 센스가 다시 한 번 돋보였던 순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랬겠지만, 차범근 감독은 이정수의 골에 남다른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상대 선취골에 차두리의 실수가 더해졌던 터라, 해설자이전에 아버지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걱정을 하면서 중계를 했을까란 생각이 들며, 이정수의 골에 목소리를 높이며 박수를 친 차범근의 심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전반전을 1:1 동점으로 마친 상황. 그러나 16강을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나 같은 시간 <그리스vs아르헨티나>는 0:0. 한국경기 못지않게 신경이 쓰였다. 만약 한국이 무승부로 끝나고, 그리스가 운좋게 골을 넣어 아르헨티나에 승리한다면, 대표팀의 16강은 좌절되기 때문이다. 메시가 출전했건만, 한국에 자비는 없던 전반전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됐고,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살골을 기록했던 박주영이 드디어 골맛을 봤다, 역시 골잡이는 위기에서 빛나는 법. 박주영의 월드컵 데뷔골은 프리킥의 미학 그 자체였다. 오른발로 감아 찬 프리킥은 멋지게 골문을 갈랐고 덕분에 2:1로 앞서 나간 한국. 16강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스와 아르헨티나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진공청소기 김남일이 골에어리어에서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었고, 야쿠부가 골을 기록했다. 2:2 동점. 이 순간부터 심장을 멎게 만들 공방전이 계속됐다. 약 25분간 이어진 스릴러같은 영화 한편. 아르헨티나가 그리스에게 연속골을 넣어 2:0으로 앞서갔지만, 긴장감을 멈추게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나 후반 말미로 가면서, 나이지리아의 대포알 슛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죄다 골그물을 출렁이게 만들어, 마치 골을 내준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정말 무섭다는 표현이 이럴 때 나오나보다. 경기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게 흘러가는 지. 1분이 10분 같았다. 2:2로 비기기만 해도 16강인데, 비기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 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심장이 막힐 듯한 순간이 지나가고, 종료 휘슬이 울린 후에도 기쁨보다는 여전히 흥분과 긴장을 떨치기 힘들다.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그 달콤한 결과를 여유롭게 즐기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16강이란 숫자가 그동안 우리 선수들에게 커다란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담은 이제 선수들도 붉은 악마도 떨쳐낼 수 있게 됐다. 다음 상대는 우루과이다. 반드시 이겨 8강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도 좋지만, 한국만의 축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표팀이 경기를 즐기고 우리만의 플레이를 하다보면, 충분히 8강 이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남아공월드컵에 대한민국 축구의 새 역사를 새겨 나가는 허정무호. 꿈은 이루어지고, 아직 승리의 함성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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