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 자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개헌 자문안’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완성된 개헌안이라기 보다는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의 참고용 초안 정도의 역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자문안에 핵심 쟁점에 대한 내용이 모두 포함됐기 때문에 정치권은 바야흐로 개헌 정국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청와대는 정해진 절차를 기준으로 역산하면 오는 21일이 대통령 발의안 제출 마지노선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60일 내에 국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고 국민투표는 공고 18일 후 기타 법률 송부 일정을 거쳐 시행되도록 돼있다. 그런데 국민투표 날짜는 6월 13일 지방선거일로 잡아야 하므로 거꾸로 계산을 하면 오는 21일에는 발의안이 제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은 반발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국회의 논의를 고려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일방적 독주’라는 것이며, 둘째는 대통령 발의안에 대한 거부감으로 국회의 개헌 논의가 더 어려워질 게 뻔한데도 발의를 강행하는 것은 6월 지방선거를 고려한 정략이라는 것이고, 셋째는 권력분산이나 이념적 편향성 등의 문제로 자문안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권의 이러한 주장이 전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최소한 맥락을 비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국회가 개헌 논의를 더 성실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하자는 것에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동의했고 이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국회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불가피하게 개헌발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국회가 개헌안에 합의를 한다면 대통령의 개헌발의권 행사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13일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국회 개헌안 발의에 대한 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14일 오전 다시 모여 논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지만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위원장(오른쪽)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국회의 개헌 논의가 진척이 없었던 것은 자유한국당이 개헌 시기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6월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는 방안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정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자유한국당은 이 입장을 거둔바가 없다. 그런데 시점의 문제는 개헌 내용에 합의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쟁점은 ‘내용’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3일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전화연결에서 “대통령중심제라도 총리의 권한을 실질화 시키는 방법으로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거나 선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국회와 대통령이 상호 협치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분권형대통령제 등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주장해왔다. 정태옥 의원의 주장만 놓고 보면 국회의 총리선출권을 보장해주면 문재인 대통령의 4년연임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상은 최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된 바 있기도 하다. 같은 날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개헌 관련 협상에 실패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렬의 이유를 “개헌 내용”이라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내용에 있어서는 국회의 총리선출권이 쟁점의 하나가 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총리선출권을 주는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일 것이다.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는 쪽에 불리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방안이 사실상 자유한국당과 일부가 주장해 온 분권형대통령제와 다를 바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인 점도 있다. 정부 여당이 내각제 또는 분권형 개헌에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내용의 개헌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반론의 핵심 논리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4년중임제를 주장한 것 역시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초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대통령 발의안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자 보수세력은 “권력구조 개편이 없는 개헌은 앙꼬없는 찐빵”이라며 이에 반발하였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4년중임제 개헌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국회의 합의에 따르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상 4년중임제 개헌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야당과의 협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민헌법자문특위의 4년 연임 대통령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4년중임제가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일부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꺼낸 것도 이 맥락 안에 있다. 자신의 4년중임제 주장이 대통령 권력 강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려 한 것이다.

결국 자유한국당이 분권형 개헌을 관철하고 싶다면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하는 것으로 다른 야당들과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 여당을 압박하면 된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현행 선거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단을 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물론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됐으면 하는 속내는 여당 소속의 주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도 공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명분의 문제에서 자유한국당이 먼저 이 문제를 풀면 여당 내 일부의 태도도 바뀔 수 있다.

이런 저런 현실의 문제를 고려하면 자유한국당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없는 이상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이 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이 개헌발의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에서 부결되고 여야 간 극한 대립구도가 지방선거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유한국당은 나름의 진정성을 갖고 개헌을 모색하기 보다는 대통령 발의안의 이런 저런 내용에 사회주의 또는 좌편향 프레임을 씌워 쟁점화 하는 것으로 정치적 위기 탈출을 시도할 것이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 여당의 책임이 결코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장 명분없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게 자유한국당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쯤되면 과연 이런 개헌 논의가 지금 필요한 것인지에도 의문이 생긴다. 국회가 이런 예상을 뒤엎고 묘수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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