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들군요. 첫 원정 16강이라는 어려운 난관을 넘기란 이렇게 힘들었나봅니다. 도무지 안심할 수 없는 90분의 시간동안 공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호흡을 멈추고 마음이 철렁하는 이 고문 아닌 고문은 종료 휘슬이 울린 다음에야 끝이 났습니다. 승리만큼 값진 무승부이고 또 한 번의 즐거운 경험을 약속해준, 좀 더 많은 욕심을 부릴 수 있게 해준 선물이었습니다. 16강 진출이라니. 이렇게 기분 좋은 아침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편안하지 못했던 경기였고,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에 대한 불만이나 선수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우선 이런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한 뒤에 천천히 해도 좋을 일입니다. 우리는 그토록 갈구하던 16강이란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앞으로도 16강이 열리기 전까지 친구와 함께 여러 문제나 불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자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잖아요? 무엇보다도 이런 소박한,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즐거움을 선물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전 많은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지만 유난히 오늘 경기 내내 한 선수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많은 나이에 묵묵하게 한쪽 라인을 지키며 경기 시간 내내 열정을 내뿜은 남자. 초롱이 이영표가 그 사람이었죠. 후배들과 함께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누구에게 뒤질세라 가장 많이 몸을 움직이며 수없이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그의 에너지는 보는 내내 조용히 이 노장에게 힘을 내라는, 좀 더 뛰어달라는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간절함은 수비가 무너지고 선수들이 지쳐갈 무렵 동료와 후배들을 독려하며 내뿜는 그의 열정 가득한 분노를 보며 더더욱 감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순둥이처럼 보이던, 웃는 얼굴이 너무나 선해 보이던 그가 화면 밖으로 들릴 것처럼 소리 지르는 그 장면은 공의 움직임에 따라 눈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다른 구장의 스코어를 보며 머리는 정신없이 굴러갔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음 한 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나고 모두가 부둥켜않고 첫 번째 원정16강을 축하할 때, 전 자연스럽게 이영표 선수의 얼굴이 보고 싶더군요. 그 순둥이가, 그렇게 열정을 터트리던 선수의 얼굴을 보며 멀리서나마 고맙다는 말을 마음으로나마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남자는 울고 있더군요. 마음속에 있던 그 강렬했던 분노의 장면을 만들어낸 열정의 남자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그 누구보다도 다양한 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겪었던 그가 활짝 웃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다니요. 첫 원정 16강이란 기쁨과 감사함을 품에 담고 있지만 아직 졸린 눈으로 긴가민가한 멍멍함에 취해있던 저는 화면 속 이영표 선수의 눈물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는 이 눈물을 위해 그렇게 온몸을 던져가며, 쉬지 않고 뛰어왔던 것이죠.

종교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후반의 아쉬웠던 수비 조직력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순수한 노력과 열정이 만든, 땀과 범벅이 된 눈물 앞에서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저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요. 이 즐거운 꿈이 부디 좀 더 오래 갈 수 있었으면, 멋진 노장 이영표 선수의 감동의 눈물을 또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밤을 샜지만, 기분만은 너무나 상쾌한 아침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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