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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 신데렐라의 반격, 살아남기 위해 강한 척하는 남자를 구원하다[블로그와]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8.03.11 10:55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할리우드의 전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으로 알려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2017)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괴팍한 천재 디자이너와 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여자의 기묘한 사랑이야기이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1940)에서 영감을 얻은 <팬텀 스레드>는 주인공의 파멸로 끝나는 <레베카>와는 다르게 폴 토마스 앤더슨만의 방식으로 기괴하면서도 황홀한 러브스토리를 완성한다.

런던 교외의 조그마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중 유명 디자이너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 분)에 의해 모델로 발탁된 알마(빅키 크리엡스 분)는 단숨에 런던 사교계가 주목하는 신데렐라로 등극하게 된다. 유럽 왕실과 사교계의 드레스를 주름지는 천재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뮤즈이자 연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알마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레이놀즈의 무심함에 지치게 된다.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 이미지

연인이 무심하면 제풀에 지쳐 이별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알마는 포기하는 법이 없다. 레이놀즈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독버섯까지 이용하는 알마의 집착은 섬뜩하게 느껴지기 까지 하다. 그런데 싸이코적 기질이 다분한 알마의 지독한 사랑을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박음질하는 <팬텀 스레드>는 숨 막힐 정도로 섬세한 우아미를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이, 알마는 1950년대 영국 사교계를 들썩이게 만든 신데렐라다. 사람들은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눈에 들어 사교계의 여왕이 된 알마의 인생 역전에만 관심을 가질 뿐, 알마가 레이놀즈의 마음을 사로잡는 우아한 백조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발길질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왕비가 된 신데렐라의 이후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정말로 신데렐라는 동화 속 결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수많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왕자는 한눈 안 팔고 평생 신데렐라만 사랑했을까.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 이미지

운명을 가장한 콩깍지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알마에게 첫눈에 반한 레이놀즈는 연인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일에 몰두할 때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레이놀즈는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길 원한다. 레이놀즈가 오직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알마는 레이놀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 레이놀즈가 자신을 계속 사랑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놀즈는 언제나 옷 만들기가 우선이고, 알마는 뒷전이다. 

만약에 <팬텀 스레드>가 1950년대가 아닌 21세기 현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알마는 영화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던 1950년대였고, 알마처럼 가난한 이민자 출신이 성공하는 유일한 지름길은 레이놀즈처럼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와의 만남이었다. 

레이놀즈는 알마를 만나기 이전에도 알마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을 신데렐라로 만들었고, 그녀들이 지겨워질 때쯤이면 자신의 일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과감히 버렸다. 알마 역시 레이놀즈의 작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버림받을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알마는 레이놀즈에게 마냥 순종적인 인형이 아니었다. 자신의 취향을 무조건 따르길 강요하는 레이놀즈 앞에서 “내 방식의 삶이 좋다.”면서 응수하는 알마는 자신에게 한없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판을 뒤엎을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을 시작한다.

영화 <팬텀 스레드> 스틸 이미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알마는 언제나 강한 척하는 레이놀즈의 약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매사 빈틈없이 철두철미하게 움직이는 레이놀즈가 한방에 쓰러지기만 기다리는 알마는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에게 기대는 레이놀즈에게서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한없이 약해진 레이놀즈가 자신의 품에서 다시 강해지길 원한다. 영원히 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자신의 뜻대로 세상에 군림하고자 했던 레이놀즈는 알마에게서 죽음의 가능성을 깨닫고 기꺼이 그녀의 품에서 잠들길 원한다. 

한 마리의 평범한 오리처럼 살아온 알마에게 백조의 날개를 달아준 것은 레이놀즈이지만,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숨 가쁘게 살아온 레이놀즈를 편하게 잠들게 하는 이는 알마다.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는 남자의 선택을 받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팬텀 스레드>의 신데렐라는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 지친 남성의 짐을 덜어주며 그와의 영원한 행복을 꿈꾼다. 레이놀즈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작정한 알마에 위험한 게임에 기꺼이 동조하고 싶은 수작 중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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