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한국 축구에 붙박이처럼 있어야 하는 상당한 존재감을 지닌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캡틴 박' 박지성과 '초롱이' 이영표입니다. 두 선수 모두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뒤로 하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진출했고, 나란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준 '위대한 선수들'입니다. 이제는 서른 줄에 접어든 선수들이지만 이들이 있어 한국 축구의 지난 10년이 행복했고, 또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많이 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제 역할을 다 해내는 이영표를 보면 박지성과는 다른 묘한 매력을 늘 느끼곤 했습니다.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라운드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영표만이 발산해내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대표팀 내에서는 '수비 선생님'처럼 동료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지적해주고, 본인 스스로 한발이라도 더 많이 움직이면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맏형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게 할 정도입니다. 그런 이영표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서서히 눈앞에 다가오고 있고, 이영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선물을 한국 축구에 선사하며 대표팀 선수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 이영표 (사진-김지한)
언젠가부터 이영표는 대표팀에서 '또 다른 코치'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훈련 중간 중간에 수비진을 불러 모아 수비진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견을 전달하고, 후배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팀의 노장으로서 첫 번째 월드컵 무대에 나선 수비수 이정수와 조용형을 이끄는 등 젊은 선수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요. 워낙 경험이 풍부한 선수이기에 이영표의 지적 하나하나는 후배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큰 자양분이 됐고, 코트디부아르, 스페인, 그리스 같은 강팀을 상대로 거의 완벽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에 큰 힘이 됐습니다. 듬직한 형님 같은 모습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33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부상 없이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면서 부지런한 경기를 펼치는 것은 이영표 특유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전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그의 전매특허인 헛다리 짚기를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앞에 두고도 자신 있게 보여주기도 했고,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리오넬 메시를 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가 볼을 따낸 모습은 경이롭게만 느껴졌습니다. 비록 이구아인을 잡지 못해 4골을 허용하며 1-4로 패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영표의 고군분투하는 플레이만큼은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경기에 패해도 '16강 올라갈 팀이라면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아시아 대표다운 면모로 나이지리아전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겠다'며 당찬 각오를 밝힌 것 역시 이영표 특유의 '보이지 않는 강한 승부욕'이 여전히 묻어나는 듯 했습니다.

▲ 아르헨티나전 전반전이 끝난 직후, 박지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영표(왼쪽) (사진-김지한)
그는 지난해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후반 경기력이 떨어져 중간에 교체돼 나가는 등 '이영표의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 관리, 그리고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해내며 다시 대표팀의 기둥다운 활약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수로서는 마지막 월드컵의 해피엔딩을 향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30살이 넘는 다른 올드보이 선수들이 대표팀을 왔다갔다했던 반면, 수년간 대표팀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가장 믿음직한 선수'로 손꼽힌 이영표의 활약 덕에 한국 축구는 든든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지난 예선 2경기를 싹 잊고 마지막 한 경기에 온 힘을 집중하려는 이영표의 열정적이면서도 성실한 플레이에 많은 사람들은 큰 박수를 보내고 응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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