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신문은 선택의 날이라고 했는데 동아일보는 ‘심판의 날’이란다. “노무현 정권 5년을 심판하는 날”이란다. 자신들의 희망사항이 반영된 이 ‘심판의 날’이라는 표현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논란을 일으킨 이후 사라진 줄 알았는데 2007년 대선에서 다시 등장했다. 동아일보에서.

보수 경쟁매체인 조선과 중앙이 ‘대선 이후의 분열상’을 고민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언어구사인 것 같다. 한마디로 참 ‘저차원적인’ 내용의 사설(<심판의 날, 미래에 투자하는 날>)을 동아는 ‘별 부끄러움 없이’ 투표 당일에 게재했다. 다른 말 필요 없다. 동아일보. 품격을 좀 지켜라.

▲ 동아일보 12월19일자 사설.
동아일보의 ‘김경준씨 편지’ 보도 … ‘닭 짓’의 극한을 보여주는 보도

사실 동아일보의 품격을 확실히 드러낸 기사는 오늘자(19일) 2면 기사다. 제목이 <김경준씨 ‘검, 형량단축 협상 제안’ 메모내용 부인 / “검사 회유-협박, 사실 아니다”>로 돼있다. 기사 내용도 핵심만 추리면 이렇다.

△이른바 ‘검사 회유 메모’ 내용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고 △이 메모가 수사 검사 탄핵소추안 발의와 특별검사법 국회 통과를 촉발시킨 기폭제였는데 김씨가 이를 부인함에 따라 정국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되며 △검찰 주변에선 특검법의 전제가 된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뒤집힌 만큼 특검법 재의 요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기사만 보면 김경준씨가 그동안의 주장을 완전 부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니다. 같은 날 한국일보에 보도된 내용을 대략 요약하면 이렇다.

▲ 동아일보 12월19일자 2면.
“BBK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전 BBK대표 김경준(41)씨가 대국민 ‘사과편지’를 공개했다. 김씨의 어머니 김영애씨는 18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 들러 김씨가 작성한 A4용지 반 장 분량의 영문 자필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제 문제로 소동(turmoil)을 일으켜 한국 국민에게 죄송하다. 저와 관련한 이슈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길 원치 않고 개인 문제로 다뤄지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김씨는 ‘검찰과 있었을 수도 있는 오해(miscommunication)가 지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좀더 신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급했다.

김씨 어머니는 ‘여당이나 야당 등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해 귀국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며 ‘(아들이)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지 절대 이명박 후보에게 사과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검찰에서 부당한 회유와 압박으로 허위자백을 하게 됐고, 사건이 복잡해서 구속 상태에서는 자료 분석 등이 어렵다’며 법원에 보석 및 24일로 예정된 첫 공판 연기를 신청했다.” (<김경준씨 “한국 국민에 죄송” 편지> 한국일보 12월19일자 8면)

해석과 단정은 다르다 … 동아 ‘해석’을 넘어 ‘이명박 특검법’ 재논의 주장

‘완전’ 다른 내용이다. 물론 김경준씨의 태도는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편지 내용만을 놓고 보면 “검찰의 회유·협박 주장을 일부 철회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다. 정치권의 해석이 제각각인 것도 김씨의 편지가 아직까지는 해석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단정해서 보도하더니 아예 ‘이명박 특검법’ 무효론(?)까지 주장한다. 이건 사실왜곡에 가깝다. “검찰 주변에선 특검법의 전제가 된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뒤집힌 만큼 특검법 재의 요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식의 ‘간접 전달’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결국 동아가 하고픈 얘기는 ‘이명박 특검법’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 중앙일보 12월19일자 8면.
‘뻘 짓’이고 ‘닭 짓’이다. 같은 날 중앙일보가 8면에서 보도한 기사 제목이 <BBK 김경준, 감형 노림수?>다. 중앙의 ‘분석’은 이렇다. △김경준씨의 이 편지와 관련해 검찰의 회유 협박 주장을 일부 철회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으며 △정치적 논란이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인지’한 김씨가 형량을 낮추기 위한 의도로 쓴 편지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날 한겨레의 분석은 이렇다. “김씨는 이날 영문 편지를 공개한 뒤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이 때문에 김씨 쪽이 반성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보석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경준 편지의 ‘이면’은 보지 않는 동아의 ‘단순·무식·과격’

사실 상식적인 선에서 보더라도 대선 이후 김경준씨의 편지는 감형을 위한 의도적인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뜬금없이’ 편지를 쓴 것도 그렇고, 그걸 김씨의 어머니가 기자실을 찾아와서 ‘공개’한 것도 그렇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액면 그대로 믿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자(19일) 중앙과 한겨레가 액면보다 이면과 배경을 짚고자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김씨가 이를 부인함에 따라 정국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흥분을 하더니 “검찰 주변에선 특검법의 전제가 된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뒤집힌 만큼 특검법 재의 요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닭 짓’도 이런 ‘닭 짓’이 없고 ‘뻘 짓’도 이런 ‘뻘 짓’이 없다. 정말 언론이면 언론답게 굴어라. 이러니 언론시민단체들에 의해 ‘찌라시’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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