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화려한, 독보적인 이수근의 존재감과 재능을 뽐낸 방송이었습니다. 개인기 하나만으로 웃음 폭탄을 만들어내는 그의 성장은 1박2일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그의 적응력과 함께 드디어 그 결실을 맺고 있어요. 애드리브의 황제로서 새로이 자리 잡으면서 단순한 말장난, 몸개그를 가리지 않고 빵빵 터트리는 이수근의 활약은 김C의 하차로 여러 가지의 의구심과 아쉬움을 안고 시작한 제1회 단합대회의 두 번째 방송을 온전히 자신의 솔로 무대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런데 이런 날아다니는 이수근의 활약 뒤에는 3년여의 시간이 만들어놓은 김종민과의 인생 역전이 그림자처럼 놓여 있습니다. 그 당시 에이스의 자리는 단연 김종민의 것이었고, 개콘의 인상적인 개그맨일 뿐이었던 예능 초보 이수근은 그저 묵묵히 화면 한구석에서 일만 열심히 하던 병풍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법원에서 보낸 그 시간동안 1박2일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고, 이수근은 이 프로그램의 웃음을 책임지는 국민 앞잡이이자 애드리브의 황제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정말 잔혹하고도 무서운 변화를 만들어내곤 해요.

이런 상황의 역전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뎌진 예능 감각과 변화된 상황에의 부적응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런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식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이나 자질만으로 해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자신의 변화와 발전만큼이나 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는 법이죠. 1박2일을 위시한 각종 예능에서의 김종민의 부진은 그의 능력 부족만큼이나 프로그램 내에서의 배려 부족, 혹은 알맞은 위치 확보 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이번 주 1박2일을 보면서 제작진이 과연 김종민을 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어요.

포기, 혹은 죽이기. 무엇이 되었든 김종민의 포지션에 대한 1박2일 제작진의 태도는 이상합니다. 배려해주고 챙겨주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가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위치가 너무나도 어중간하고 부정적이에요. 게임을 못해서 미션 성공을 방해하는 단순한 바보, 웃음 포인트도 만들지 못해 안절부절못한 부적응자, 혹은 여러 차례의 실패로 소심하게 움츠러든 병풍 외에 그동안 1박2일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라곤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만큼이나 아쉽기 그지없는 제작진의 배려와 위치 잡아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박2일 투입 이전에 김종민이 어떤 모습으로 융합되어야 할지에 대한 제작진과 김종민의 사전 조율과 고민이 부족했다는 말입니다. 그저 그가 참여할지 아닐지에 대한 논란만 많았을 뿐, 납치되듯이 투입된 김종민의 등장은 기존의 캐릭터의 관계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들면서 전체의 조화를 망가뜨려 버렸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그의 능력과 부적응은 이 어수선함을 더욱 배가시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잘못 끼워진 단추는 시간이 갈수록 그 엇갈림만을 심화시킬 뿐, 미래를 향한 그 어떤 전망도 보여주질 못하고 있어요.

그런 그가 이젠 이수근의 탁월함과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만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수근의 상대역 자리, 혹은 그의 가르침을 받는 첫 번째 대상은 언제나 김종민이었고 그의 부담감은 이수근의 능력이 강조되면 될 수록 더더욱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그냥 무시 받는, 혼자서만 바보가 되는 은근한 따돌림 같은 처우는 그의 힘겨움을 점점 더 강화시킬 뿐이에요. 다시 6인체제로 돌아온 1박2일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여전히 붕 떠있는 김종민에게 어떤 긍정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부과할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이렇게 단순히 이수근바라기, 혹은 퇴물 에이스로만 머물러버린다면 제작진은 김종민 죽이기를 시행하는 것뿐이에요. 물론 그 무엇보다도 이젠 제발 김종민 스스로가 각성의 포인트를 찾아오는 것이 더욱 절실할 테지만 말이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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