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현재 촬영중인 드라마 제작 종사자 중 60% 이상이 하루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촬영 중 부상을 당했을 경우 산재처리가 되지 않고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도 60.6%에 달했다. 이에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이하 드라마 TF)의 주최로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실태 제보 결과 발표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에선 드라마 제작환경 노동실태 결과 발표와 함께 특별근로감독 촉구 등이 이뤄졌다.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실태 제보 결과 발표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청년유니온)

‘드라마 제작환경 노동실태 기초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설문에 응한 드라마 제작 종사자 113명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6시간, 휴식시간은 2.7시간에 불과했다. 한 달 기준 휴일이 5일 미만이라고 응답한 종사자는 52.8%에 달했다.

부상을 당했을 때 치료비의 부담도 종사자의 몫이었다. 촬영 과정에서 부상 경험이 있는 응답자 66명 중 40명은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했고,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일부만 부담해줬다는 응답자는 11명이었다. 드라마 TF는 “조사 결과 수년간 방송 스텝이 산재처리를 했다는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드라마 차량 촬영 장면. 별다른 안전 장비 없이 촬영에 임하고 있다(유투브 화면)

응답자들이 겪은 사례도 심각했다. 촬영 종사자들은 ▲53시간 촬영 후 졸음운전 ▲엄청 추운날 야외 촬영하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이러나 죽겠다 싶었던 적 ▲차비 미지급, 오버차지 미지급, 휴일전날 무리한 강행 촬영 ▲과로로 인한 건강 이상이 생겨도 쉬는날이 없어 병원을 못가고, 가더라도 개인 비용으로 처리 및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방송종사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기는 어렵다. 113명의 응답자 중 본인을 정규직이라고 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고, 75명이 프리랜서였다. 현행법상 프리랜서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없다.

청년유니온 김병철 위원장은 “방송 제작 시 연장 근로를 해야 할 때는 서면 합의를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지켜지지 않았다”며 “드라마 제작종사자들은 현장에서 일을 강요당하고 있다.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가 프리랜서인데 실질적으론 종속적인 관계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실태 제보 결과 발표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청년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탁종렬 소장은 방송사와 정부 부처, 노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탁 소장은 “지금까지 제작현장이 방치된 이유는 정부 부처에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방송사에 책임을 돌린다. 외주제작사의 문제를 제기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업무 소관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방송 제작환경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시간 노동은 생명과 직결된다. 고용노동부가 현장에 나와 실태를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송사와 노조의 책임도 지적했다. 탁 소장은 “방송사와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자다. 이제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 정상화가 적폐청산에 그치면 안 된다. 왜곡되고 기형화된 제작환경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문제는 방송사와 제작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상세한 현장 실태가 담겨있는 제작 일지를 공개하고 제작비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근로감독요청대상 드라마(OCN/JTBC/KBS/TVN)

드라마 TF는 28일 오후 2시 고용노동부에 특별 근로감독을 요청할 예정이다. 요청 대상 드라마는 ▲JTBC 미스티 ▲KBS 라디오로맨스 ▲OCN 그남자 오수 ▲TVN 크로스다. 드라마 TF는 “이들은 현재 제작 중인 드라마이며 다수의 현장 제보가 있었다”고 밝혔다. 중점적인 요청 내용은 ▲장시간 근무 및 휴게시간 미부여 ▲임금 체불 및 최저임금 미달 ▲안전 보건조치 의무 위반 ▲프리랜서 계약 관리 등이다. 드라마 TF는 “여러 증거가 있다”며 “제보자 색출의 우려가 있어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기 힘들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최정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노조가 있는 언론사도 특별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돼 있다. 마음이 복잡하다”며 “그럼에도 이 언론사를 특정해서 드러낸 건 이번 기회에 방송사들이 앞장서서 개선하자는 뜻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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