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는 외부기관인 '공영방송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하고 KBS 수신료 문제를 재논의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공영방송의 잠재적 혜택이 현재 수신료 분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에 따라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수신료 인상에 있어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필수성이 획정돼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세웠다.

2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언론의 사회적 책무와 안정적 재원의 확보 방안'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정준희 중앙대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의 잠재적 혜택 지수는 낮은 편이지만, 1인 수신료 분담은 그보다 더 낮기 때문에 인상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준희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의 잠재적 혜택 지수를 중~중하위 정도로 추산했다. 정 교수가 제시한 잠재적 혜택지수 즉, 공영방송의 사회적 필수성에 대한 지수는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Nordicity(2016) 평가에 따른 것이다. 정 교수는 "캐나다에서는 공영방송을 어떻게 정당화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며 인구밀도, 공용어, 다인종성, 언어시장, 인접국, 프로그램 등의 지표에 따라 특정 사회에서 미디어 공공서비스 실수요를 측정한 사례를 소개했다.

2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언론의 사회적 책무와 안정적 재운의 확보 방안'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정준희 중앙대학교 교수(왼쪽에서 두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스)

정준희 교수는 "공영방송의 잠재적 혜택지수는 미디어 공공서비스가 과소공급될 위험성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한국은 동일 지표를 적용하여 평가할 경우 과소공급 위험성이 낮기 때문에, 공영방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이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미국·중국·일본 등 압도적 자본 규모에 의한 위협, 북한 등에 의한 지정학적 위협, 민주주의적 공고화 필요성 등을 고려할 경우 한국 공영방송의 잠재적 혜택지수는 이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준희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신료 분담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인상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의 잠재적 혜택이 중하위~중위 수준에 이를 것이라 짐작되는 반면, 1인당 공공재원 분담 규모는 그와 같은 서비스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인당 공공재원 분담 규모를 미화 50달러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높여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준희 교수는 이와 같은 수신료 인상의 전제로 공영방송의 사회적 필수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경영적·내용적 독립성의 확보와 명확한 미디어 공공서비스 책무의 획정"이라며 "공공서비스 책무에 대한 정기적 검토와 업데이트를 일정한 설명책임 제도를 통해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방송에서 공공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그 공공서비스를 왜 KBS가 해야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국회·정부·KBS에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명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정준희 교수는 '공영방송수신료위원회'와 같은 미디어 공공서비스 재정 수요 산정 기구에 국회, 정부, 공영방송,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해 논의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국회는 미디어 공공서비스의 제도적 영역을 획정하는 데에, 정부는 공영방송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공공가치와 시기별 공공서비스 책무를 구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공영방송은 필요하고 구현가능한 혁신적 기획을 제안하고 실천함으로써, 그리고 시민사회는 공영방송에 대한 공적 기대를 구체화함으로써 각각의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공영방송 재정수요 산정 기구는 이와 같은 사각구도 안에서 재정 수요를 가늠하고 안정적인 재원의 규모와 조달방식을 결정·권고해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준희 교수의 발제에 덧붙여 강명현 한림대 교수는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 모델을 수신료 인상 문제 해결에 차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한국에서 수신료 문제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면서 "여·야간 합의가 어려울 때에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용한 우회로를 뚫어야 한다. 원전 공론화위 모델도 수신료 문제에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KBS 수신료는 현행 방송법에 따라 KBS 이사회가 인상안을 심의·의결하면 방통위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돼야 최종 결정된다. 국회뿐만 아니라 KBS 이사회, 방통위 역시 정치권력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에 국민 공론화위 등 숙의 민주주의를 통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의견이다.

강명현 교수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서 정책 결정에 참여하게 된다면 가능하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에 대한 논의까지 할 수 있다"면서 "여·야 정치권이 결론낼 수 없다면 공론화위 등을 적용해 수신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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