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는 조합원들은 짧게는 몇 달, 길어도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초 입국 시 최대 4년 10개월밖에 체류할 수밖에 없는 고용허가제도의 단기순환시스템은 10년 넘게 고수 중이다. 5년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할 시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에 대해 이주노동자는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 만료를 몇 달 앞둔 조합원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흔히 이주노동자들은 제주도 여행을 가장 많이 선호하는 편인데 방글라데시 조합원 A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기후조건상 눈을 제대로 보기 힘든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온 조합원들은 한국에 와서 추운 겨울과 눈을 신기해하며 30년 만에 열리는 동계올림픽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 재단법인 희망철도재단에서 좋은 기회를 마련하여 비정규직노동자, 지역아동도서관, 청년단체 등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희망열차를 타게 되었다.

동대문 야시장 나들이

2월 25일 올림픽 마지막 날 열리는 봅슬레이 오픈 4인승 3차&4차 경기에 관람하기로 한 뒤 관심 있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모집했다. 멀리 안산, 포천, 수원 등에서 와야 하는 조합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하루 전날인 토요일엔 동대문 지역에서 모여 하룻밤을 자고 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역에 모이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 동대문에 있는 네팔식당에 모인 30여명의 이주노동자 중에는 방금 주말특근을 마치고 온 사람, 두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온 사람, 사업장변경문제로 쉼터에서 지내는 사람 등 다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잠시라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다음 날 일정을 위해 마무리했으나 몇몇 조합원들은 동대문 야시장 구경을 하고 싶다며 삼삼오오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결국 동대문 근처에 위치한 찜질방에서 몇 시간 쪽잠을 잔 뒤 졸린 눈을 비비며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경기장이 위치한 진부역까지 열차로 대략 1시간 20분정도 걸렸고, 다시 진부역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장까지 이동했다. 올림픽 폐막식 당일과 겹쳐서인지 봅슬레이 경기장이 위치한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는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성황이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주조합원들이 흩어지지 않고 제시간에 잘 이동할 수 있도록 체크하는 일이었다. 이주동지들은 저마다 셀카봉과 카메라, 핸드폰 등을 들고 한시도 쉬지 않고 셀카와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동선을 이탈하지 말라고 하는 탓에 계속 실랑이가 벌어졌다. 올림픽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해서 보안검색대까지 통과해야 하는데 한 시간 가까이 줄이 이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조합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어차피 놀러 온 일정인데 다 같이 움직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 하에 봅슬레이 경기장 곳곳에 흩어져서 모이는 시간만 확실히 지키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단체사진

봅슬레이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썰매를 타고 눈과 얼음으로 만든 트랙을 활주하는 경기인데 경기 특성상 찰나의 순간을 만끽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대략 일요일 오전 10시 반정도였는데 3차 경기가 끝나고 곧 시작할 4차 경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다들 핫팩을 붙이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자리경쟁이 한창이던 도중 저 멀리서 4차 경기를 시작한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음성과 함께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평균시속 135km에 달하는 봅슬레이 경기는 TV로 시청할 때와 여러 부분에서 달랐다. 일단 피니쉬 코스 쪽의 응원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는데 봅슬레이 가속도에 따라 얼음벽에 거의 붙듯이 수직으로 달리는 팀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떨어지면 봅슬레이가 지표면상에 붙어 달렸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무조건 내려가는 게 아니라,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커브와 상하코스가 뒤섞여서 선수들이 견뎌야 하는 중력가속도는 5G에 달한다고 했다. 특수유니폼을 입는다고 하지만 중력을 막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1분이 안 되는 경기시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녹초가 되어보였다. 이주노동자 동지들과 순간 1~2초밖에 되지 않는 봅슬레이 경기 사진을 한 장이라도 제대로 찍기 위해서 타이밍을 맞춰 연사 촬영을 했지만 번번이 빈 얼음배경 사진만 50장을 넘게 찍기도 했다.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마지막 순서에 한국팀이 등장했고 한국선수들의 분투 끝에 당당히 은메달을 따내는 순간을 이주동지들과 함께 축하했다.

한 시간 넘게 추운 야외경기장에서 핫팩 하나로 버티다보니 배가 급격히 고파졌고 오대산 쪽에 위치한 황태구이 식당으로 이동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대산 월정사로 이동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전나무숲길을 걷고, 곳곳에서 이주동지들과 단체사진을 함께 찍었다. 다시 평창역으로 이동하여 서울로 올라오니 온 몸이 녹초가 된 듯 피곤했지만 이주동지들과 1박2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만으로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오랜만에 좋은 경치를 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는 한 조합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돈을 벌러 한국에 왔지만 그 사이사이에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삶의 여유 역시 이주노동자들에게 절실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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