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정점에 달하던 1960년대 후반, 미국 소도시에 위치한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온다. 모두가 괴생명체를 두려워한 나머지 물리적으로 제압하려는 반면, 유일하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비밀 실험실을 청소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이다.

선천적인지는 모르지만, 발견 당시 언어장애가 있던 엘라이자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다. 엘라이자가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수화인데, 그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엘라이자의 옆집에 거주하는 가난한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와 엘라지아의 절친한 동료이자 흑인 여성 노동자인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 그리고 괴생명체. 이 셋뿐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은 사족처럼 달아놓은 한국어 부제처럼 사랑 이야기다. <셰이프 오브 워터>를 두고 많은 해석이 있긴 하지만, 기자는 흡사 <미녀와 야수>를 보는 듯했다. 야수(괴생명체)를 사랑한, 말 못하는 미녀(엘라이자)는 야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미녀와 야수>와 <셰이프 오브 워터>의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면, <미녀와 야수>의 야수는 저주를 받아 흉물이 되었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의 괴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 그대로 였단 점이다. 원래 괴생명체는 아마존 부족들이 신처럼 섬겼던 성스러운 존재였다. 실제로 괴생명체가 실수로 물어뜯은 고양이 얼굴이 거의 원상회복되는가 하면, 평소 머리숱이 없어 고민하던 자일스는 괴생명체의 가호(?)를 받고 머리카락이 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고 있는 존재가 되살아날 수 있는 힘을 안겨준다. 그러나 성경을 기반으로 한 서구 문명은 괴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물의 힘을 믿지 않는다. 괴생명체를 잡아 비밀 연구소까지 끌고 온 리차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새넌 분)에게 괴생명체는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한 제거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백인 남성 우월주의를 내면화한 스트릭랜드는 다부적인 체격을 앞세운 마초적인 남성미부터 자기보다 못한 존재는 짓밟고자 하는 거만한 성격까지 <미녀와 야수>의 게스톤을 연상시킨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이 가진 타고난 남성성으로 요직의 반열에 오른 스트릭랜드는 여전히 성공에 목말라있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인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데 앞장서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 스트릭랜드는 최적화된 ‘괴물’이다.

혹자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두고 차별과 혐오를 은연중에 조장하는 트럼프 시대의 광기를 저격하는 영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를 방증하듯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기독교 서구 문명만 참이라고 믿는 백인 마초 스트릭랜드에 맞서는 여성, 장애인, 흑인, 외국인, 동성애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등장한다. 생김새가 인간과 다를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도 엘라이자 하고만 가능한 괴생명체는 서구 문명과 대치되는 제3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괴생명체는 자신을 공격하려 드는 스트릭랜드 같은 존재에게는 한없이 잔혹하고 광폭한 행보를 보여주지만 엘라이자나 자일스처럼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존재에게는 한 마리의 양처럼 온순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영화라는 예술의 형태로 저항하고자 하는 <셰이프 오브 워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조건 없는 사랑. 괴생명체를 사랑하는 엘라이자는 그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괴생명체가 원래 그가 살던 물의 세계로 안전하게 돌아가기만 바랄 뿐이다.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은 특정한 형체가 없는 물의 모양과 닮아 있다. 애초 물의 모양이 존재하지 않듯이, 사랑에도 모양이 없다. 사랑의 모양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그 정의를 타인에게 강요하려 드는 순간, 그 사랑은 폭력으로 다가온다.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과 다른 형태와 생각을 가진 이들을 존중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나머지 정작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존재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각성하게 만드는, 황홀하면서도 기괴한 로맨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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