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금칙어와 금기가 무수하게 존재하는 한국의 방송계에서 욕설과 비난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이용해 성공한 사람은 아마 김구라가 유일할 겁니다. 인터넷 방송 초창기의 열기를 영리하게 공중파로 이식한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성공한 사례이자 노골적이고 뻔뻔한 개그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진 시청자들의 시각 변화를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사실 전 그가 아직까지 공중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실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솔직히 그의 원죄와도 같은 과거 무수한 발언들은 지금 다시 듣는다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감정 배설들로 가득하니까요. 과거는 모두 지나간 것이고, 당시의 형편이 그렇게 밖에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 논리를 앞세운다고 해도 정도가 지나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구요. 그런 그가 여전히,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김구라라는 캐릭터가 가진 필요악 같은 웃음 포인트의 매력만큼이나 그가 내뿜는 독설과 비난이란 해독을 어떻게 중화시키고 있느냐의 여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웃기다 해도 독한 개그는 반복되면 될 수록 그 자신을 망치기 마련이니까요.

이제까지 그 해독제의 역할은 그의 귀여운 아들 동현이가 도맡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행보나 지금의 독한 캐릭터가 그렇게 똘똘하고 귀여운 아들을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던 지,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아버지도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이미지 탈색에 탁월한 방식이었으니까요. 스스로도 가끔씩 자조하듯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살린 아들인 동현이의 방송활동은 단연 김구라의 방송 생명을 연장시켜준 일등공신이었어요.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김구라는 아들 덕에 성공한 못난 아버지일 뿐이었을 겁니다. 김구라 역시도 다른 이들을 많이 공격하는 만큼이나 스스로도 창피와 굴욕의 순간을 피하지 않는, 반작용의 충격을 담담히 흡수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왔거든요. 일밤의 뜨거운 형제들에서의 모습이나 이번 주 라디오 스타의 영어 굴욕처럼 언제나 뻔뻔하고 당당해보일 것 같은 남자는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욕쟁이가 반격당할 때 느끼는 통쾌함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노련함을 익히고 있어요.

물론 호락호락하게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할 때 당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김구라로 남아 있어야 하니까요. 영문과 출신을 늘 내세우지만 정작 그리 유창하지 못한 실력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거나, 유연하지 못한 삐꺽거리는 몸으로 이기광의 춤을 저질스럽게 재현하는 것은 김구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굴욕이죠. 창피한 순간에도 당당한, 하지만 그런 당당한 모습도 조금은 구차해 보이는 모습은 그가 스스로 감내하는, 끝까지 손가락질 받는 광대로서의 원칙에 충실한 방식입니다. 아무리 냉정하고 똑똑해보여도 그 역시도 얄팍하고 부족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그의 독설과 욕설에 좀 더 너그러워 질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죠.

그의 굴욕 역시도 김구라라는 광대가 보여줄 수 웃음의 한 종류라는 것이죠. 잘난 척 이 사람 저 사람을 물어뜯다가도 영어로 하는 구구단에 당혹해하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어떻게든 이 굴욕을 만회해보려고 애를 쓰는 고집쟁이의 모습은 다른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김구라만의 웃음 포인트입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좋아할 수 없으면서도 역시 그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통쾌한 굴욕이었어요.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유능한 방송인. F(x)와 함께한 이번 주 라디오스타는 욕쟁이 김구라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방송이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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