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SNS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혀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운동'이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계, 언론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이 미투운동의 본질이 아닌 성폭력 자체에 몰두해 자극적인 보도를 양산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의 신분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행태까지 벌어지고 있어 2차 피해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달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2시 55분 현재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는 한 신인 연극배우 A씨의 이름이다. 20일 아주경제 단독 보도로 촉발된 배우 조민기 씨의 성폭력 의혹의 피해자 중 한 명이 A씨이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민기 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적은 바 있다.

A씨의 페이스북 글 말미에는 언론의 취재 행태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었다. A씨는 "이 일과 관련해 많은 언론사에서 저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 왔다"면서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잊었는지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증언만을 이끌어내려는 기자분들의 태도가 저를 더욱 힘들게 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A씨는 "무엇을 위한 취재이고 누구를 위한 언론이냐"면서 "언론 또한 피해자를 또 다시 숨게 만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A씨의 호소에도 언론은 계속해서 A씨의 실명을 거론하며 조민기 씨의 성폭력 의혹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비판의 지점이 조 씨의 성폭력임을 감안하면 A씨가 아닌 조 씨가 기사의 중심이 돼야 하지만, 애꿎은 A씨가 언론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은 것이다. 결국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비공개로 전환한 상태다.

이와 관련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성범죄 보도의 경우 피해자가 2차, 3차 피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언론이 성범죄 보도를 할 때 있었던 일을 리얼하게 묘사를 한다거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다거나, 이런 방법으로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선정적·자극적 보도가 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교수는 "물론 이미 공개된 상황에서 언론이 보도한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겠지만, 피해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개인 신상에 대해 보도하면 안 된다"면서 "언론이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자극적인 보도를 통해서 더 관심을 끌려는 의도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미투운동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하면서 피해 사례를 스스로 말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다보니 언론이 암묵적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보도해도 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제기는 하지만 본인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공론화 하고 싶은 마음과 모든 기사에 내가 회자되는 것은 구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미투운동 관련 보도에서 피해자를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피해사례만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은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에 있는 하지 말아야 할 내용 중 하나"라면서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성폭력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본인이 공개했으니 어때'라는 건 취지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성폭력 사례의 경우 본인이 공개했다고 해서 언론에서 모두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누가 봐도 명백한 성폭력인 행위에 대해 너무 노골적으로 디테일하게 보도하는 것은 과하다"면서 "미투운동 관련된 보도가 차분해질 필요가 있고, 전체적으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언론이 미투운동을 공론화 해서 사회의 개선점을 가져가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면, 선의에 걸맞게 내용에 있어서도 정제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하는 보도는 미투운동조차 성적으로 소비하고, 장사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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