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거대한 축제, 한국팀의 안정된 전력과 그리스전의 멋진 승리로 달아오른 남아공 월드컵이 섭섭한 사람이 있을까요?(1박2일의 말처럼 아쉽고 서운하다는 말보단 역시 섭섭하다는 표현이 더 다가가기 편안하네요.ㅎㅎ)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표팀의 선전이 껄끄럽고 축제의 북적거림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한 개인으로서는 이번 월드컵이 여러모로 아쉬운 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각종 이권과 새로운 기회가 넘쳐나는 시간이 섭섭한 스타들은 누가 있을까요? 재미삼아 순위를 정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5위 : 조형기

이경규의 파트너로 경기장의 열광과 흥분을 대변하며 매번 월드컵마다 맹활약을 펼쳤던 그이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형기의 모습은 잠잠하기만 합니다. 그나마 월드컵과 관련한 행보는 놀러와 월드컵 특집에 특별 게스트로 초빙되어 2002년의 분위기를 추억하는 한물간 아저씨의 모습을 보여준 것뿐이었죠. 중장년층의 정서를 어루만지며 이 거대한 축제의 분위기를 폭넓게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각종 월드컵 특집 방송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체 조금은 섭섭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4위 : 김병지

기회가 왔다고 해서 섣부르게 붙잡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예입니다. SBS의 무책임한 섭외 능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기도 하구요. 출전 선수들에 대한 부족한 사전 지식, 적절하지 못한 단어 사용, 사투리가 묻어나는 불분명한 발음 등등의 미숙한 해설 능력은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선수로서의 경력을 까먹기만 하고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시청자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는 SBS의 해설진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이는 바로 김병지에요. 경제적인 이익, 선수 생활 이후의 활동을 위한 선택의 폭을 넓혀준 기회였겠지만 그렇더라도 이번 남아공 월드컵의 해설 활동은 아쉬움이 너무 큰 선택이었습니다.

3위 : 김성주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그가 배신의 아이콘이라 비난받으면서도 자신을 키워준 MBC에서 독립 선언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4년 후 또 다른 월드컵에서의 자유로운 중계 활동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아나운서의 짐에서 벗어나 그가 가장 절실하게 꿈꾸었던 스포츠 방송 전문 중계를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욕심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SBS의 단독 중계로 협소해진 중계방송의 지형은 가뜩이나 힘겨운 그가 취할 수 있었던 반등의 기회마저 제거시켜 버렸습니다. 4년 뒤를 바라봤던 김성주의 도박은 2010년에는 실패로 돌아가 버렸어요.

2위 : 이경규

남자의 자격은 남아공에서 생생한 화면을 전달해주고 있고, 매번 그랬던 것처럼 이경규는 월드컵의 상징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이번 남아공 월드컵이 섭섭해 보이냐구요? 현재 남자의 자격은 독점 중계권을 두고 SBS와 KBS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신경전의 가장 최전선에서 명분을 다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부족한 완성도, 아쉬운 방송 내용으로 SBS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을 고조시키는 방편이 되고 있는 것이죠. 그 와중에 이경규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축소되어 이전에 누렸던 명성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4년에 한번 돌아오는 반등의 기회이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만큼은 천하의 이경규마저 그저 방송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위한 장기말의 하나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에요.

1위 : MBC

남아공월드컵이 섭섭한 스타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그 누구보다 이번 축제의 시간이 가장 섭섭하고 안타까운 이들은 한 개인이 아닌 MBC입니다. 이 엄청난 기회의 시간동안 MBC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경규와 함께 했던 일밤의 열광, 김성주와 차범근을 앞세운 경기 중계의 성공으로 다른 방송사들과의 경쟁에서 늘 한발 앞서 있었던 MBC는 그나마 KBS처럼 SBS를 향해 날을 세우며 대립하지도 못한 채 그저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파업으로 준비 기간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실제 MBC가 월드컵을 활용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남의 잔치를 구경하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입니다.

공감이 가는 순위인가요? 그러고 보니 이 순위들도 SBS의 독점 중계권이 만든 아쉬움들이 대부분이군요. 한달여의 시간이 모두 축구 이야기로만 도배되는 상황도 지겨운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이번 남아공 월드컵이 월드컵 같지 않은 고요한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런 어수선함의 책임이 모두 SBS의 욕심 때문이라 손가락질 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각 방송사들의 보다 현명한 대처와 준비가 아쉬운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월드컵이 섭섭한 이들은 바로 이런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들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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