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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의 댓글을 보며서이라 선수에 쏟아지는 비난과 '2030세대 재발견'론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2.19 09:15

문학 등 예술작품의 역사적 가치는 남아있는 다른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시대의 어떤 지배적 정신 요소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에 있지 않나 한다. 오늘날은 뉴스나 SNS 계정 등에 사람들이 쓰는 댓글이 그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둘러싼 여론의 형성을 보면 특히 그렇다.

19일 보도된 특정 선수의 SNS에 ‘악플’이 달리는 현상에 대한 기사의 사례를 보자. 조선일보는 이날 지난 17일 열린 남자 쇼트트랙 1000미터 결승전에서 한국의 서이라 선수와 충돌한 헝가리 선수 리우 샤오린 산도르의 SNS가 ‘선플’로 채워지는 일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경기 직후에는 비난이 쇄도했으나 곧 한국인들이 알아서 자정 작용을 만들어 내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지난 13일 여자 쇼트트랙 500미터 경기 이후 캐나다 선수인 킴 부탱의 사례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의 최민정 선수가 킴 부탱의 무릎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실격이 되자 악플이 쇄도했는데, 이러한 행태가 옳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팔면봉’ 코너에서 “댓글 세상에선 제발 양화가 악화를 몰아내길 기대”라고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분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사태의 일면만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댓글’을 통해 관찰해본 바, 이 사건에서 일부 한국인들의 분노는 오히려 서이라 선수를 향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을 정리하자면 결과적으로 서이라 선수가 과한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임효준 선수가 탈락했다는 이야기다. 역할 분담을 잘 해서 실력이 보다 나은 임효준 선수의 추월을 도와야 했으나 오히려 견제를 했고 이것이 리우 샤오린 산도르와의 충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 자체의 논리로 선후관계나 책임 소재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으나 그건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이 자리에서는 사회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집중하도록 하자. 서이라 선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지난 2014년 칼럼니스트 박권일 씨가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지적한 ‘타락한 능력주의’의 전형으로 볼만하다.

스포츠는 다른 여타의 요소를 제거하고 오직 신체적 능력 하나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수단처럼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 안에서 능력주의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지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서이라 선수가 자기 능력에 맞는 만큼만 바라야 하는데 주제넘게도 그 이상을 넘봐 결과적으로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것이다. 그 욕심만 아니었다면 한국은 금메달을 하나 더 땄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전에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의 문제로들 보았다. 국가나 조직이 내세우는 대의보다는 의사결정과정의 절차적 합리성이나 어떤 공정성의 추구를 통해 개인의 권리를 더 앞세우는 풍토가 특히 ‘2030세대’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이러한 ‘2030세대’를 마치 이념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세대의 등장인양 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것 마냥 기뻐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건 한국 서이라(오른쪽)가 18일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에 오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관점으로 서이라 선수의 사례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순전히 서이라 선수의 입장에서 앞의 해석을 적용해본다면 한국의 금메달 추가 획득이라는 가치보다 개인의 성과를 더 중시하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선수 본인은 이런 해석을 부정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대의보다는 실질을 추구한 개인적 합리주의의 전형적 모습이 아니겠는가?

실제 이런 비난의 반대편에 선 일부 SNS 이용자들은 서이라 선수의 행위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양보’나 ‘팀플레이’ 따위의 대의에 실질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쪽이든 저쪽이든 결국 같은 인식론적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서로 동일시하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결국 이는 국가냐 개인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어떤 부당한 존재로 인해 박탈됐다는 피해자 서사의 문제로 압축된다. 어떤 사람은 이 피해자를 임효준 선수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서이라 선수로 본 것이다.

사람들이 주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노력해봐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사건의 연속이 삶 그 자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삶이 본궤도에 올라 앞으로의 미래가 거의 확정적인 기성세대보다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가 이 문제에 더 민감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앞의 세계관에서 임효준 선수가 겪은 것처럼 능력도 없고 눈치도 없는 사람이 ‘나’의 성과를 가로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또 마찬가지로 서이라 선수처럼 ‘나’는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되는 일도 늘상 있다. 이런 식으로 성과를 빼앗기기만 해서는 ‘안정적 삶’의 경계 안쪽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의 성과를 지키는 게 답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2030세대’만의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인터넷의 이용과 이를 통한 감정의 공유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연결사회’는 ‘초비교사회’를 만들었다. SNS 등 인터넷 공간은 남과 나를 일상적으로 비교하면서 스스로의 상품적 가치를 발견하는 공간이며 소비주의적 판단 기준과 질서를 내면화하는 도구이다.

과거 같았으면 불특정다수와 단절된 삶 속에서 숙명으로 받아들여졌을 ‘부당함의 강요’에 대한 문제의식은 인터넷 상의 공명을 통해 소비주의적 문법을 빌린 시대정신으로 재탄생했다. 이 속에서 가장 큰 울림을 갖는 것은 ‘안정적 삶’의 경계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위기감이다. 그리고 이 위기감의 정체는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폐기된다는 상품 논리와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 양품은 살고 불량품은 죽는데 이 사회의 양품이 되는 길은 너무도 멀고 험난하다. 가상화폐 논란에서 나온 “5천만원은 있으나 없으나 흙수저”라는 말에도 이런 함의가 담겨있다.

서이라 선수를 향한 비난이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한 집단의 책임을 논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은 이 사건을 가장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만일 이런 저런 행태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들이 금 은 동메달을 나란히 모두 땄다면 이런 논란은 사실상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겐 개인주의나 공정성의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 이득을 안길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령 북한의 여자 아이스하키 팀이 세계 랭킹 1위였다고 가정해보자. 반발이 있었겠는가? 여기서 또다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냉소적 세계관이고 이는 정치의 가장 큰 적이다. 우리는 공정성을 요구하는 2030세대를 재발견한 게 아니라 포스트-아포칼립스의 세계를 인터넷 댓글에서 여전히 확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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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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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 2018-02-19 13:33:24

    국민의 탓으로 몰지말자. 댓글에 가중치를 두지 않았다면,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플랫폼으로 선동하는 포탈이 가장 큰 문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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