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예능에 없던 그림 <집사부일체> (2월 11일 방송)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

툭툭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지난 11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는 사부 최불암과 제자 4인의 두 번째 이야기를 담아냈다. 하룻밤 묵을 집을 고르고, 술을 마시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사소한 순간에도 최불암의 말에는 묵직함과 울림이 있었다.

최불암과 제자 4인방의 숙소를 고를 때, 최불암의 오랜 친구들은 서로 자기 집에서 자라고 경쟁 아닌 경쟁을 했다. 제자들이 최종적으로 집을 선택하자, 선택받은 당사자는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이를 두고 최불암은 나지막이 “내 집에 와서 고맙다는 얘기. 이런 세상이 천국이지 뭐”라고 읊조렸다. 늦은 밤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논할 때, 최불암은 젊은 시절 술을 마셨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사반장> 녹화를 하면서 삶의 애환을 느낀 최불암은 “벌게진 심장, 마음의 불을 끄는 도구”였다는 철학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

제자들은 커플 수면잠옷을 준비하고 ‘훈민정음’ 술자리 게임을 하거나 자장가를 불러주는 등 사부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일부러 준비했지만, 사부는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최불암이 일부러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스승의 모습과 말에서 더 큰 깨달음과 배움을 얻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의리, 술자리에 대한 철학, 머리를 백지장처럼 만드는 영혼 훈련. 벗, 술 그리고 비움. 예술과 철학, 그리고 낭만이라는 표현이 오가는 대화. 결코 예능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이었다.

사부와 제자의 교감은 최불암의 어머니가 생전에 운영했던 명동주점 ‘은성’에서 이루어졌다. 최불암이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은 육성재는 그 시를 노래로 불렀다. 처음엔 그저 평범하게 노래를 부르려 했지만, 최불암을 비롯해 모두가 한 마디씩 보태면서 노래를 부르는 자세까지 철저하게 연출됐다. 마치 인위적인 연극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육성재가 술에 취한 듯한 제스처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 몰입의 순간은 사부 최불암과 제자들이 만들어 낸 교감의 결과물이었다.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

1940년생 최불암이 1956년 쓰인 박인환의 시를 읊고, 그것을 다시 1995년생 육성재가 노래로 불렀다. 그동안 쌓여온 시간이 더해지면서 더욱 울림이 커졌다. 70대 노배우와 20대 가수 겸 배우가 교감하는 순간을, 그 어떤 예능에서 볼 수 있을까. <전원일기>와 <수사반장>의 상징에서 <한국인의 밥상>의 상징이 되어 팔도 밥상을 소개하는 최불암을 예능으로 끌어들인 <집사부일체>는 70대 노배우와 20대 아이돌 멤버가 교감하는 투샷을 만들어냈다.

이 주의 Worst: <안녕하세요> 제작진에게도 솔루션이 필요하다! (2월 12일 방송)

KBS2 예능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예능으로 다룰 수 있는 고민이 아니라, 실제로 전문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민이다. 그동안 KBS <안녕하세요>가 수차례 지적받아왔던 고질적인 문제다. 그러나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방송된 <안녕하세요>의 ‘시한폭탄 남편’에 대한 고민은 역대 최악의 남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 후 180도 바뀌었다는 남편은 툭하면 화를 냈다. 아내가 남편의 눈치를 보고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데, 남편은 “그래도 때리지는 않는다”면서 자신의 욱하는 성격을 합리화한다. 게다가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는 둥, 나니까 너를 데리고 산다는 둥, 안 맞은 걸 다행으로 알라는 둥 인성을 의심케 하는 막말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는 틀에 가둘 수 없는, 배우자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부하 다루듯이 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KBS2 예능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가 이런 종류의 고민, 그러니까 비상식적인 남편이나 아내 사연을 다루는 공식은 거의 정해져 있다. 주인공의 고민을 소개한다, 배우자의 막말이나 행동에 경악한다, 그러나 배우자는 주인공의 고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MC들이 설득해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갑자기 막돼먹은 행동이나 막말에 일말의 면죄부가 주어진다, 그럼에도 상대방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눈물 섞인 고백으로 급하게 마무리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얘기를 나눌수록 답답함은 더욱 커져갔고, 남편은 여전히 아내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이야기, 나이 많은 인부들을 이끌고 일하느라 거칠어진 성격, 큰 빚을 지게 되면서 심적 부담감이 커진 경험담 등을 털어놓으면서, 남편에게 어떤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아내의 고민은 1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MC들이 아내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요청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웃으면서 “자기야, 나한테 좀 잘해줘”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전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녕하세요>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크고 무거운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KBS2 예능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신동엽은 남편에게 “시선 폭력과 언어 폭력도 어마어마한 폭력이다”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하고 홍석천은 “돌아이 맞는 것 같다”고 독설을 했다. MC들이 아내를 대신해 남편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안녕하세요>가 이런 고민을 예능으로 소비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고민의 주인공들뿐 아니라 <안녕하세요> 제작진에게도 솔루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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