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자본”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익히 알지만 세상사는 이렇게 단순히 정리하기엔 또 너무 복잡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 씨의 판결을 봐도 그렇다. 최순실 씨는 13일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 연결에서 특가법 상 뇌물수수에 대해 징역 10년부터 30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특검이 25년을 구형을 했으니까 대략 12년에서 15년까지 탄착군이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예상보다는 높은 형량이 선고된 셈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보면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삼성과 관련한 대목이 그렇다. 재판부는 최순실 씨 사건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청탁은 없다고 봤다. 따라서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후원한 것 역시 뇌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삼성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을 한 것에 대해선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에서 판단했던 72억원에 차량 사용 이익을 더한 액수를 단순 뇌물로 보았다.

결국 최순실 씨에 대해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불가피했지만 그 와중에도 삼성의 책임은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13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전화 연결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지난번 항소심이 너무나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비판은 좀 면하면서 대법원이 파기 환송할 수 있을 정도의 판결은 피한 것”이라고 평한 게 대표적이다.

박영수 특검팀에서 특별수사관을 맡았던 이정원 변호사 역시 같은 날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삼성의 경우에는 승계작업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고 그에 따라서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인데 SK나 롯데는 제3자 뇌물수수가 모두 인정돼 유죄판단을 했다”며 “삼성만 이렇게 오려낸 듯 판단한 것이 좀 기이하긴 하다”고 했다.

물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1심 판결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서도 ‘봐주기’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앞서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박영선 의원은 “실형 선고에 대해선 롯데와 다른 재벌과의 차이점도 있기 때문에 2심에서 어떻게 될지 유념해서 봐야 한다”고 평했다.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됐더라도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일각에서는 1심 2년 6개월 선고를 일종의 ‘집행유예 공식’처럼 여기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가 6일 서울 서초구 민변 회의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판결 규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토론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재벌과 이에 영합하고 편승하는 사법과 행정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최근까지 밝혀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12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삼성증권에 개설된 증권계좌로 사실상 삼성증권이 이건희 회장의 사금고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원래 이 차명계좌들에 소득세를 중과하는 선에서 조치를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됐으면서 이후 실명 전환되지 않은 계좌에 대해선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통해 제기되면서 법제처에 공을 넘겼다. 법제처는 지난 12일 이건희 삼성그룹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법령 해석을 금융위에 전달했다.

문제는 법제처의 법령 해석 직후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는 것이다. 과징금 액수는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만들어진 계좌의 잔액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1993년 8월을 기준으로 이전 계좌의 원장을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지 않아 당국이 이를 확보할 수 없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건희 회장의 금융실명제 이전 차명계좌를 보유한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 등 4개 증권사는 금감원에 당시 계좌 원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금융 당국이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액션’을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과연 금융당국 설명대로 과징금 부과가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온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1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세금을 걷어야 하고 과징금을 걷어야 된다는 것을 환기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증빙자료까지 내가 찾아다녀야 하느냐”면서 “어떻게든 추징이 가능한 추정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삼성 특검 관련 자료들도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판사와 관료 뿐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보수언론이 다루는 방식이 그렇다. 보수언론은 이를 과도한 인건비 문제로 다루면서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4일 사설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인건비가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생산성은 세계 하위 수준”이라면서 “세계 최악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생겨난 것은 한국 특유의 철밥통 노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GM의 경영난이 과연 인건비 문제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이를테면 GM본사가 한국GM에 3주원 규모의 돈을 빌려주면서 연이율 5~7%의 이자를 받기로 한 점 등이 그렇다. 본사가 해외법인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한 셈인데, 이외의 연구개발 관련 비용 논란 등까지 합치면 애초에 GM이 과거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나면 철수할 수도 있다는 경영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초국적 자본이 부실화된 기업을 인수해 알맹이만 빼가고 손해는 노동자에게 전가한 후 사업을 정리해버리는 전형적 행태가 반복된 것 아니냐는 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13일 백악관에서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가 과거 자동차 산업을 주력으로 했던 디트로이트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될 거라면서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자신이 내세운 ‘아메리카 퍼스트’의 효과라는 거다. 이제 보수언론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자본에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정치의 동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침 개혁을 말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려 최소한의 것이라도 고쳐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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