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허정무와 마라도나는 각 팀의 주축 선수로서 정면 승부를 벌였습니다. 사실 이름값으로만 놓고 보면 마라도나가 한 수 위였고, 경기 초반에는 두 선수가 크게 마주칠 일이 없어서 이들의 맞대결을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닌 마라도나를 효과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허정무의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허정무가 오른발로 마라도나의 왼쪽 허벅지를 걷어차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이에 대해 전 세계 언론은 태권 축구를 구사했다며 허정무의 플레이에 비난했지만 볼을 걷어내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정상적인 플레이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허정무와 마라도나의 악연이 시작된 것입니다.

24년이 세월이 흘러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에서 한국과 만난 마라도나 감독은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허정무 감독을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한국 선수들은 축구가 아닌 태권도를 했다"면서 한국 축구를 그저 몸싸움만 하는 팀으로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허정무 감독 입장에서는 당연히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이번 두 번째 맞대결에서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밝혔습니다. 또 한 번의 정면 승부가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허정무에 걷어차인 디에고 마라도나
17일 밤(한국시각),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사커 시티에서 열리는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남아공월드컵 B조 예선 2차전은 다른 어떤 변수들보다 허정무와 마라도나의 24년 만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많은 재미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기가 끝난 뒤, 과연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줄 지, 승부욕만큼은 정말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의 대결이 어떤 결말을 맺으며 마무리될 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감독 실력에서는 허정무 감독이 마라도나 감독보다 다소 앞서 있다고 봅니다. 풍부한 감독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07년 12월, 대표팀을 맡아 월드컵 예선에서 무패로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일궈내며 상승세를 탔습니다. 반면 마라도나 감독은 볼리비아에 1-6으로 대패하는 등 들쭉날쭉한 경기력으로 남미 예선에서 4위로 턱걸이한 뒤, 잦은 기행(奇行)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대표팀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단 두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첫 경기에서 각각 그리스, 나이지리아에 완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끊었습니다.

두 감독 모두 4-4-2 전형을 선호하고 스타 플레이어를 중시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세부적인 전술 스타일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기량이 좋은 미드필더를 앞세워 강한 압박과 역습 전술로 재미를 본 반면 마라도나 감독은 리오넬 메시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를 5명이나 보유할 만큼 가공할 만 한 공격 축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허정무 감독의 따뜻한 소통을 앞세운 리더십과 마라도나 감독의 독불장군 스타일도 대조를 이루며 선수들을 지도하는 스타일에서도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면이 많은 두 사람만큼이나 경기 전 장외 대결도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은 '한국 축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보여주겠다'며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펼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마라도나 감독 역시 '나이지리아전에서 아껴둔 골을 한국전에서 쏟아 붓겠다'며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예선전이지만 마치 8강, 4강 대결을 앞둔 대결만큼이나 발언에서 자존심 대결을 벌인 것은 그만큼 두 팀 모두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전 대결보다 흥미진진한 한판 승부를 벌일 이번 대결에서 마지막에 웃는 승자는 누가 될 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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