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1만2000여 명으로부터 1조 980억 원을 빼돌린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에게 파산 선고가 내려졌다. 복수의 언론은 일제히 "투자 피해자들이 일부분이나마 피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보도와 달리 정작 피해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회생법원을 비토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언론보도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법원 깃발. (연합뉴스)

8일 복수의 언론은 서울회생법원 22부(부장판사 안병욱)가 김성훈 대표에게 파산을 선고했으며, 파산 관재인을 선정해 김 대표의 재산을 조사하고 이를 매각해 채권자들에게 피해금 비율에 따라 나눠준다고 보도했다. 법원은 김성훈 대표의 은닉 재산이 있을 것으로 보고 보상금 제도를 활용할 것이며, 채무자의 은닉재산 회수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 사람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게 규정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법' 조항에 따라 은닉 재산을 찾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경우 기여도에 따라 은닉 재산의 실제 환가액에서 5~20% 상당의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파산으로 인해 IDS홀딩스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파산 선고로 피해 회복을 위해 김성훈 대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사용한 변호사 비용을 모두 날렸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말 비참하고 암담하다"면서 "우리가 돈을 찾기 위해 민사소송을 하고, 김성훈 등을 형사처벌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모든 동력원을 다 잃어버렸다"면서 "그거 하나 보고 이렇게 싸워왔는데, 모두 멘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김성훈이 파산됐으니 재산을 회수할 수 있고 피해자들은 배상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식으로 기사가 도배된 것에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이번 파산에 대해 명백한 파산절차 남용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미디어스는 피해자 12명을 대신해 파산 신청을 진행한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근무 중인 A씨가 피해자들을 상대로 대화한 녹취록을 입수했다.

녹취록에서 A씨는 "저희가 솔직한 얘기로 만약에 400억 원 압류한 채권자들이 우리한테 20억이나 40억 지금 던져주지 않습니까? 우리 판단 취소해버린다. 그날 바로 취소해버려요"라면서 "우리가 뭐, 우리 신청인들의 이익만 대변하면 되는 겁니다. 저희 변호사 사무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A씨는 "어중이 떠중이 다 들어올 것 같으면 일단 부인권으로 대응을 하고 중간에 반드시 채권자와 하든 채무자와 협상을 하든, 3의 이익을 보는 자들과 협상을 하든 우리는 처음부터 다 내다보고 간 것"이라면서 "돈 납부를 안 하면 협상을 좀 지켜보겠죠?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A씨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파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청자들을 위해 협상을 통해 돈을 받아내는 방법까지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이민석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명백한 파산절차남용"이라면서 "녹취록에 명백하게 파산 목적이 아니고 돈을 받는 게 목적이라는 게 나와있는데, 피해자들이 항고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사기 범법자가 파산되는 선례를 남길 경우 이후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민석 사무총장은 "이런 게 선례가 돼버리면 모든 사기꾼들이 이렇게 파산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사기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금에 대한 균등분배가 필요한 것은 맞다"면서도 "IDS홀딩스 사건의 경우 동양증권 사건처럼 정상적으로 사업하다 파산한 경우가 아니라 애초에 사기 목적이었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 목록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균등분배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민석 사무총장은 파산의 경우 피해자들의 구제도 늦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사무총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것도 어렵고, 이런 식이라면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김성훈이 면책을 신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사기꾼만 더 보호해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파산 신청 이후 재산, 채무 변동이 있으면 파산 기각 사유가 된다. 그런데 파산 신청이 들어간 이후 지난해 5월 홍콩 IDS FOREX에서 김성훈 대표를 대신해 대위변제를 하겠다고 나섰던 웅산홀딩스 회장 한 모 씨에게 200만 달러 상당의 돈이 넘어갔다. 김 대표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예 모 이사가 경찰 조사에서 시인한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USB에 담아 제보서와 함께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파산 선고 후 판사를 붙잡고 물어봤는데, 업무도 과다하고 탄원서와 진정서가 너무 많이 와서 일일히 다 볼 수는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복수의 언론은 "일부분이나마 피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물론 강한 긍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언론이 피해자 1명이라도 연결을 시도했다면 이러한 뉘앙스의 문장은 삭제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회생법원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만 받아쓰기 바빴다.

김성훈 대표가 구속되기 전부터 IDS홀딩스를 지속적으로 취재해온 한 기자는 "언론이 피해자들에게 파산선고가 원했던 것인지도 물어보지 않고 법원이 하는 말만 앵무새처럼 보도하는 것 같다"면서 "피해자, 내부자를 컨택해서 취재하지 않고 판결문에만 의존해 기사를 쓰는 행태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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