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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담과 연애괴담 사이[도우리의 미러볼] 이현주 감독 사건으로 보는 성폭력 개념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02.09 13:32

[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영화 <연애담>의 감독 이현주 씨가 동성 감독을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피해자 폭로 뒤 혐의를 부인했다가 3일 만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이 씨의 성 소수자 정체성이 성폭력 책임의 방패막이로 쓰인 것이다. 이 씨는 동성 간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에 의해 준유사강간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또 피해자 폭로에 대한 반박문에서는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내세웠다. 미국 유명 배우 케빈 스페이시도 성폭력 가해가 폭로되자 게이라고 커밍아웃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성 소수자의 ‘권리’를 내세웠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오히려 이성애 중심주의 성폭력 개념에 기댔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 사건에 얽힌 성폭력 개념들을 살펴보려 한다.

이현주 감독 (연합뉴스)

성기·이성애 중심주의 성폭력 개념

현행법은 남녀 간 성기 결합만을 성교로 인정한다. 성기 중심적이자 이성애 중심적인 성폭력 개념이다. 이 씨는 이 개념에 의지해 강간 판결을 받지 않았다. 또 이 씨는 자신이 성 소수자라는 ‘약자성’을 내세워 보호받으려 했다. 이 역시 이성애 중심주의가 성 소수자를 대등한 인격체가 아닌 시혜적 대상, ‘유사 인격체’로 보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 씨는 작품 <연애담>에서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다를 게 없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으나, 성 정체성을 악용함으로써 그 메시지를 스스로 배반하는 꼴이 됐다.

이번 사건처럼, 이성애 중심적 성폭력 개념은 많은 성폭력을 간과한다. 2010년 국제 질병 본부(CDC) 보고서에 따르면 평생 겪는 성폭력은 동성애자와 양성애자가 이성애자보다 훨씬 웃돌았다. 이성애가 표준이 되다 보니 성 소수자 간 성폭력을 인지하는 데 오래 걸리는 데다, 자신의 피해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므로 신고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애(가부장제) 중심 성폭력 개념은 이성애자도 억압한다. 남성이 당한 성폭력이 무시당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남성은 힘이 세서 저항할 수 있고, 성행위라면 항상 즐길 것이라는 편견들 때문이다.

강제성 여부 중심 성폭력 개념

이 씨는 은퇴 선언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시인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 저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성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억울함이 묻어난다. 여전히 이 씨가 자신의 가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강제성’ 여부 중심의 성폭력 개념 때문이다.

강간죄는 강제 여부가 중요한 잣대다. 그래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것을 동의의 빌미로 삼기 쉽다. 강간 약물을 먹이거나, 만취하게 한 뒤 성폭력을 저지르려는 시도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방이 정신을 가누지 못해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거나, 필름이 끊긴 채 성행위에 응하면 ‘강제적’ 성교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제성’에 매몰되면, 발기나 절정처럼 내 의사와 상관없는 생리학적 반응이 동의로 해석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씨가 피해자의 ‘신음소리’를 합의의 근거로 본 것도 그 예다.

성폭력의 핵심, ‘성적 자기결정권’

강간죄나 유사강간죄나,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본질은 같다. 성기가 삽입되나 성기 외 다른 것이 삽입되나,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정도가 성기 쪽이 반드시 심하다는 보장이 없다. 강간도 강제성 여부보다는 상대방이 충분히 동의 의사를 밝혔는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살피는 쪽이 더 안전하다. 결국 성폭력의 기준은 성 정체성도, 폭력을 당한 부위도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 존중 여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폭력의 고통에서 구제받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나아가 단순히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소극적 성적 자기결정권보다, 부당한 성적 규제를 개정하는 적극적 성적 자기결정권을 추구해야 한다. 권리는 공공재이기에, 넓힐수록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권리를 협소화하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상찬하며 아꼈던 작품 <연애담>이, 괴담이 되어버린 이번 사건처럼 말이다.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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