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달력은 예능이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시도임에도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둔 결과물이다. 항상 같은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창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이자 숙제이듯이 무한도전 역시 달력 제작의 변화를 꾀했다. 그동안 무한도전 멤버들끼리 찍었던 달력사진을 이번에는 마치 화보 작업을 하듯이 전문가들을 동원했다. 분명 사진이라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높아진 것은 분명했지만 이미 그런 사진은 아주 많이 존재한다.

무도 달력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며 팔리는 이유는 사진의 가치보다 우선 프로그램과 멤버들에 대한 호감과 달력사진에 담겨진 무한도전만의 독특함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당연 멤버끼리 찍은 것들에 비해 당연히 월등한 퀄리티는 만들어냈지만 오히려 평범해졌다.

또한 서바이벌 형식을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사진 위주의 사진이 되는 바람에 예전처럼 멤버들 여럿이 담긴 달력들과 달리 훈훈함이 떨어졌다. 조금 신랄하게 말하자면 괜히 돈 들여서 망한 꼴이 되었다. 전문가라는 사람이 오히려 망쳐버린 2월 촬영 때 박명수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전문가가 만능이 아님을 또 알아야 할 것이다.

달력만 망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를 흔들었다. 무한도전에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문외한인 멤버들에게 지도를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번 달력 모델 서바이벌은 아주 근본적인 룰을 위반했다. 작업한 사람이 심사하는 것은 정직한 무한도전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2월 심사에는 작업에 참가하지 않은 이승연이 출연해 유일하게(그리고도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객관적 평가를 내놓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승연이 없었다면 전문가들은 유재석에게 꼴찌의 굴욕을 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의 결과물은 객관식 시험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주관식 문제를 자기가 풀고 자기가 채점하는 꼴이 됐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코미디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도맡은 꼴이 됐다. 물론 이런 부조리 상황이 본의건 아니건 현실에 대한 지독한 야유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 무한도전이 담고 있는 현실 비판은 시청자가 쉽게 알아차리고 공감하는 것보다는 작가주의에 더 가깝다.

또한 무한도전이 주는 재미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에 있다. 또한 무한도전이 예능에 함몰되지 않고 감동과 메시지를 주는 것도 그 실패 혹은 서툰 모습에 있다. 무한도전은 임무를 다 마친 결과가 아니라 종착지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과정을 더 중시해왔다. 비록 무한도전 멤버들이 달력사진 모델에 도전한다는 기본 포맷은 갖췄지만 이번 도전은 낭비에 가까운 소모였다.

무한도전의 변치 않는 대원칙은 '대한민국 평균이하'이다. 1박2일이 이미 식상해진 복불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대안을 찾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어쩐지 지루해졌더라도 없으면 허전해질 정도로 익숙해진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리기보다는 자꾸 새로운 의미와 형식을 대입해서 끌고 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평균이하'라는 개념이 무한도전에서 갖는 의미는 1박2일의 복불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복불복은 아이템이지만 무한도전에게 그 개념은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력 모델 도전은 그 원칙에도 위배된다. 너무 깔끔하게 나온 결과물들이 오히려 불만스러웠다. 유명한 사진이 실린 달력을 몰라서 무한도전 달력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어설프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치한 사진들이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다른 사진과 달력들과의 확실한 차별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재미가 평소보다 덜하긴 했어도 유재석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보다 모델 장윤주가 이끌어가는 미숙하고 서먹한 진행이 새로운 재미를 주기도 했다. 또한 2월 달력 심사를 위해 나온 이승연이 지적한 모범답안 유재석의 문제 혹은 한계에 대한 코멘트는 어쩌면 유재석이 드러내지 못하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것은 비단 유재석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한도전 자체의 진단이자 고백일 수도 있다. 무한도전을 놓치고는 절대로 주말 저녁을 보내지 못하는 열광적인 팬이 존재하는 한편 시청률은 오랫동안 답보상태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유재석에게 꼴찌의 굴욕을 안긴 건은 재미를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무한도전이 참 정직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만들고 있다는 확인을 시켜주긴 했다.

그렇지만 어설퍼도 예전의 무한도전 달력사진이 훨씬 더 정감이 느껴진다. 모두 인기 연예인이기에 이미 모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들은 모델로서 모델이 아니라 그들만의 케릭터로서의 모델이라는 점에서 잘 빠진 사진들은 오히려 그들답지 않았다. 이번 사진들이 분명 전보다 세련된 결과인 점은 분명하지만 거꾸로 그 점 때문에 어색하고 촌스러웠다. 이미 제작된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남은 것만이라도 무한도전 본래의 작업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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