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개막했고, 한국의 첫 경기를 앞둔 오늘. 우리 월드컵의 대표자산이라 할 거리응원에 대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거리 응원을 하기엔 날씨가 조금 문제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거리응원을 향한 의지는 강렬한 듯 하고, 모두를 거리로 끌어낼 기세다.
-그런데, 그 의지의 대상과 주체가 정확하게 누군지, 또 그 의도는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찌됐던, 2002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규모 거리응원, 전광판 시청과 집단 응원의 역사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한국에서 이어질 예정인가 보다.
심지어 장소는 엄청 다양하게 늘어났다. 서울에만 공식적으로 서울광장, 코엑스앞, 서울월드컵경기장, 왕십리광장, 한강공원으로 5곳이다.

경기도는 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9곳이 예정됐고, 수도권 외에는 대구시가 국채보상공원과 시민운동장, 코오롱야외음악당 등 3곳으로 가장 많다.
-여기 집계의 기준은 공식 응원지로 지정되어 포털 네이버에 거리응원정보 응원 장소에 고지된 것을 기준으로 했다.-

응원, 그것도 축구에서의 응원은 분명 의미 있는 행위이긴 하다.
축구의 초창기부터 집단적 흥분을 가능케 하는 순간. 스타디움에 모인 모두를 하나, 아니 두개의 커다란 집단으로 만다는 마력과도 같은 힘이 바로 단체 응원이다.

그라운드를 앞에 두고, 스타디움에 모여 펼치는 응원이란 건, 말 그대로 현장을 두고, 우리 선수와 상대 선수를 향해 직접적으로 외치는 행위다.
모든 순간을 같이 호흡한다해도 과언이 아닌 행위, 어떤 다른 의미나 가치보다 현장의 리얼리티가 가장 잘 살아있는 숭고한 공간이자,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매우 제한된 자들에게만 허락된 축복, 그렇기에 그 대체 수단은 필요했고, 현대의 대량생산기법은 여기서 엄청난 대안을 만들었다.

바로, 그것이 거리응원. 모여서 큰 화면을 보며, 외치는 응원이 바로 그 새로운 방법으로 떠올랐다는 거.
현장에서 펼쳐지는 순간에 대한 반응이 아닌 TV중계 화면에 대한 반응이자, 스크린 속 영상에 대한 리액션이지만 보는 이들에겐 현장감과 유사한 흥분을 준다.

화면을 본다는 행위로만 본다면, 차라리 실내에서 보고자 하는 요구가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도 이번 월드컵에 거리응원을 나가겠다는 사람들보다 실내공간의 단체응원이나 집에서 보겠다를 택한 이들이 무려 4배 이상 많다고 한다.
그라운드의 그 느낌도 아닌, 그렇다고 더 좋은 그림을 보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분명, 그런 거리응원의 한계는 명확하게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응원을 나가는 이들의 행위 자체를 무시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2002년 당시와 같은 자발적 축제의 모습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고, 우리만의 고유한 월드컵 문화라 자랑해도 나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 거리응원은 그 보는 행위와 보는 방식의 문제를 떠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자유로 쓸 수 없는 공간이 된 광장에 대한 문제로 번져버린 듯 하다.
그 광장의 응원은 재벌이 있고, 정치가 있으며, 권력자의 눈이 있기 시작했다.
-이는 월드컵 응원이란 이유로 잠시 가려져 있을 뿐, 결코 없지 않다. 오히려 더 크고, 강하게, 넓게 자리하고 있다.-

다른 이유에서 닫혔던 광장은 월드컵에 의해 열렸고, 이 과정은 매우 자본적이고, 또 정치적이란 생각을 거둘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보는 화면에는 독점과 그 독점에 반대하는 방송들의 경쟁이 있고, 또 독점한 이의 본전 회수를 위한 자본집착이 있다.
거리응원의 아이템을 갖춰 그 장면을 다시금 TV로 만드는 이들은 4년전, 혹은 8년전 붉은셔츠와는 다른 버젼을 요구하고, TV속의 모든 스타들은 축구로 광고한다.

이 모습들이 이어지며, 다시 우리는 그 장면들을 모여서 TV로 본다. 그것이 지금, 2010년의 거리응원이다.
거리응원의 모습과 그 공간에 도구들은 기업적이거나, 아니면 매우 선정적, 혹은 노련하고 다양한 마케팅이 거의 전부다.

분명 좋은 의도와 가치로 모인 이들도 많다. 하지만, 한편에는 자본을 찾는 기업과 스타를 만들려는 업계의 노력들이 그런 노력을 무색하게 한다.

경기장 응원, 혹은 2002년과 같은 자발적 응원. 그런 숭고함이나 가치가 사라진 건 아닌지, 2010년의 거리응원은 그 시작의 길목에서 걱정이 앞선다.
모든 자본은 돈이 모이는 곳에만 번쩍이고, 그 공간만을 강조하는 그런 거리응원이 되버린 듯 해서, 그리고 그런 풍경이 그저 2002년의 순수처럼 포장되는 듯 해서,
따져보면 결국은 TV를 모여 보는 행위에 불과한 그런 거리응원, 그 행위까지가 그 광장에서 허락되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허용범위인지 모른다.

닫혀있는 광장이 열린, 그 배경이 영 언짢은 이유다. 월드컵의 뜨거움이나 축구의 숭고함은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 아닐까?
부디 이번 거리응원이 다시 우리가 광장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잊었던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자본의 과도함을 모두가 비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열린 광장이 월드컵을 계기로 다시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의 가치는 자본과 정치를 넘어선 것이길 바란다.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