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판결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고전적 개념을 살짝 비튼 ‘유전집유’란 얘기도 나오고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의 개인 신상에 대한 여러 보도 또한 나오고 있다. 반발이 거세지자 7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정형식 판사 나름의 ‘항변’을 직접 지면에 싣는 방법을 택했다. 여기엔 “친인척 관계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도 포함됐다.

판결의 의문점에 대해서는 다수의 언론과 식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으므로 이 지면에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부당한 판결이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말한 “한 발 물러서자”는 건 비난을 멈추거나 기계적 중립의 태도를 취하자는 게 아니다. 부당한 판결에 대한 비판은 멈추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런 상황이 가능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비난은 기득권 비판의 어떤 정형을 띄고 있다. 사법부가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에 사실상 지배되고 있으며 판사들은 법리가 아니라 돈과 인적관계를 통해 얻는 이득에만 매달리고 있다. 즉, 법치라는 대의는 언제나 핑계에 불과하며 기득권의 사적이득 추구가 늘 이를 대신한다.

이런 현실인식은 대부분 사실에 가깝다. 법조계와 삼성의 유착관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 역시 삼성의 광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삼성은 신문과 방송 전반에 상시적으로 돈을 쥐어주는 체제를 만들고 자신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면 재정적 위기를 촉발하는 방식으로 언론을 길들인다. 이것은 더 이상 비밀도 뭐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미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판결이 나왔을 때 전형적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의 분노가 특히 격렬한 것은 이런 유착관계를 정상의 범주 내에 있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서 ‘정상’이란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대가를 받는 ‘정의’가 관철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신상필벌을 논하는 임무를 맡은 자들이 앞서 묘사한 것처럼 자기 주머니만 챙긴다. 이런 사람들을 빨리 내쫓아서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구치소를 나서는 길에 “여러분께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점 다시 한번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말한 걸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자신도 아는 것 같다. “좋은 모습”이란 무엇이고 “세심하게 살피겠다”는 것은 무엇에 대한 얘기인가?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앞뒤야 어찌됐든 사람들이 원하는 ‘정상’의 범주 내로 빨리 모든 일을 되돌리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정상적 사회의 체제 자체에 이미 균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판결을 전후한 삼성의 움직임을 보자. 삼성전자 이사회는 지난달 31일 50대 1 비율로 주식 액면분할을 결정했다. 액면분할 자체가 기업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액투자자들이 주주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주식 가격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들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주식투자의 세계는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므로 액면분할이 반드시 부양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다. 실제 일부에선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2심 선고 대비설이다. 주주 간섭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액면분할이 경영권 방어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옥중결재’를 해 이를 단행한 것은 ‘경영권 승계’라는 뇌물죄 프레임을 무력화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 아니냐는 거다. 물론 이런 해석은 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일한 진실 또한 아니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경영권 승계’가 주주자본주의의 일반적 원칙에서 벗어나있다는 것인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죄’를 말하는 핵심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상적 사회’를 빨리 회복하려면 1원1표의 주주자본주의 원칙과 시장경쟁원리가 하루 빨리 관철되어야 할 것 같다. 이를 통해 삼성이 정치권력의 간섭 없이 기업 본연의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런데 2심 선고 이후 삼성의 행보에 대한 또 다른 전망을 보면 사람들의 요구에는 이런 진단과는 또 다른 측면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이재용 부회장의 복귀로 삼성전자가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 중 하나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이다. 평택 제2생산라인에 3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 강화를 통한 사회적 책임 확대를 추진할 거라는 얘기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야 말로 따지자면 정치적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보수언론이나 경제지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서 어느 한쪽만을 취하라는 식의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지 정경유착이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와 경제가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떤 식의 동맹을 맺었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2심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 편의를 위한 뇌물 제공’에서 ‘강요에 의한 재단 출연’으로 사건의 본질에 대한 판단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판사가 ‘삼성장학생’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이렇다면 이럴 수도 있고 저렇다면 저럴 수도 있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든 아니면 강요에 의한 재단 출연이든 정치권력에 돈을 준 삼성의 행위가 결국 누구에게 이득을 안겨주는가를 따질 때에만 해소된다. 이게 자본과 보수정치 공동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판결은 정의롭게 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정치적 기획과 실천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민주화라는 다소 애매한 정책적 구호로도 제기되고 있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지배를 하는 자들이 아니라 지배를 당하는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가 힘을 얻고 실제로 작동해야 달성될 수 있다고 볼 수가 있다. 문재인 정권은 어찌되었든 그러한 일을 해내리라는 기대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조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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