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일제히 찬양에 가까운 사설을 저마다 내놓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정형식 부장판사를 '법조계 원칙주의자'라고 치켜세웠다. 조선일보가 정 판사를 원칙주의자로 판단한 근거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유죄 판결'이 포함됐다.

6일자 조선일보는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소식을 전하며, <"보수·진보 상관없이 법리만을 따지는 법조계 원칙주의자">를 함께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당초 법조계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결과가 1심의 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면서도 "'묵시적 청탁'이란 정황 증거로 유죄를 판단한 1심은 논란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그럼에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 이유는 항소심 재판부가 판단을 뒤집을 경우 일부 세력으로부터의 거센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면서 "법원도 사회의 풍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권교체로 사법부 권력도 달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 정형식 재판장은 이런 예측을 깨고 1심과 다른 법리를 적용해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줬다"면서 "그는 주변 인사들에게 '이념이나 여론에 관계 없이 법리만 따지는 원칙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고 치켜세웠다.

조선일보는 정형식 판사의 과거 판례를 들어 정 판사의 원칙주의에 찬사를 보냈다. 조선일보가 내놓은 판례는 2013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무죄에서 징역 2년으로 바꾼 판결과, 2014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판결이었다.

또한 조선일보는 "예상대로 판결 직후 인터넷에선 그(정형식 판사)를 향해 '사법 적폐', '삼성 장학생' 같은 비난은 물론 원색적인 욕설이 이어졌다"면서 "여당과 친여 시민단체 반발도 격렬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부터 지나친 적폐청산 수사와 영장을 기각한 판사들에 대한 신상털이를 하는 여론이 문제가 있다는 논조를 이어왔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러한 논조는 '적반하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선일보가 판사 문제삼기에 앞장섰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통상적인 범위의 재판 비평뿐만 아니라 판사의 의견이나 사생활까지 문제 삼은 바 있다.

▲2008년 8월 14일자 조선일보 사설.

지난 2008년 8월 14일 조선일보는 야간집회 금지 금지 조항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박재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겨냥해 사설을 작성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 사설에서 "이 판사는 일반인도 아는 법의 상식도 모르고, 모든 판사가 지켜야 할 법관윤리강령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이런 판사가 아직껏 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고 비난했다. 또 "가뜩이나 사법부가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요즘"이라면서 "이 판사는 자신이 그 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1년에는 자신의 SNS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게재한 당시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를 향해 쓴 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막말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은 국민은 없다> 사설에서 "대학을 나와 나이가 마흔이 넘고 직업이 판사라는 사람의 입과 손에서 '가카'니 '쫄면'이니 하는 표현이 줄줄 흘러나오는 걸 보면 법원도 세상도 갈 데까지 간 것"이라면서 "아무리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페이스북에 썼다고 하더라도 이런 천박한 표현을 거리낌 없이 썼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재판 당사자들은 사건의 재판을 맡은 판사가 어떤 사람일까 가장 궁금해한다. 그래서 판사의 표정, 몸가짐, 말투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며 그걸 통해 그 판사의 됨됨이를 가늠해 본다"면서 "그런 과정에서 판사가 경박하거나 편견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걱정으로 잠을 설치는 게 국민이다. 서 판사는 그런 국민 앞에서 자기의 인격적 맨몸뚱이를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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