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을 사흘 앞둔 16일 저녁 뉴스 시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주가지수가 3천포인트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자신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돈을 가진 사람은 지금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약 20년 전에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의 얘기가 떠올랐다.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각자 출마한 두 김씨(김대중, 김영삼)는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총선을 치른다. 총득표수(당 후보자들이 얻은 득표의 총 수)에서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김대중의 평민당보다 앞섰지만 지역구에서 당선된 곳이 더 많은 평민당이 제 1야당으로 부상한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1987년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를 했지만 총선을 통해 야당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 문화일보 12월15일자 3면.

1989년 김대중 총재의 예측 뒤에 주가 대폭락

김대중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 참모인 박철언과의 협상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던 ‘대통령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기로 전격 합의한다. 그리고 어느 날 김대중 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환담하면서 “주가지수가 1천포인트까지는 올라 갈테니 기자들도 (여유자금이 있으면) 주식에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김 총재 자신도 주식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는 주가지수가 5-600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김 총재가 당시 그런 말을 한 것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권의 주도권을 쥔 입장에서 자신의 주도하에 정국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당시는 포철과 한전 등이 ‘국민주’란 이름으로 주식을 발행하면서 전국에서 주식 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기자는 지금까지 주식 한 주도 가져본 적이 없는 (무능한) 사람이다. 그래도 주식시장이나 동향은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측도의 하나이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중앙일보 12월15일자 6면.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던 친척 형님을 만났다. “형님, 지금 주식투자에 난리가 났는데, 제가 볼 때는 얼마 안 가 주식시장에 대폭락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그냥 적당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폭락이 일어날 겁니다. 지금 빨리 팔고 일단 빠져 나오세요.”

그러나 그 형은 “네가 주식시장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느냐”는 표정으로 기자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얼마안가 주식시장에 대폭락 사태가 발생한다. 1989년으로 기억된다. 주위 친인척 돈까지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을 끌어들인 수많은 개미군단들이 깡통계좌를 차고 길거리에 나앉았다.

개미군단들이 당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 몇가지

기자가 무슨 점쟁이라서 그런 예측을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기자가 어쭙잖게 그런 판단을 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주식시장 규모가 작았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규모도 그랬지만, 그 중에서 주식시장 전체 규모도 대략 일본의 20분의 1 정도였다. 일본의 증권회사 하나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주식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체 주식시장 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이른바 큰 손들이 ‘장난’을 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둘째, 이른바 기관투자가와 큰 손들은 각종 정보 접근에서 개미군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 우위에 있다.

셋째, 주식투자는 액수가 얼마가 되든 여유자금을 갖고 해야 시세가 떨어지면 팔지 않고 느긋하게 보유하고 있을 수 있는데, 밑천이 작은 데다 빚까지 얻어 투자할 경우 매매 시점 등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미들은 근본적으로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개미들이 주식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노름도 그렇지만 주식시장에 처음으로 투자한 사람들에게 가끔 행운이 오는 수가 있다. 이름하여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다. 화투 같은 것을 칠 때도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초심자가 일시적으로 잘되는 경우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이 함정이 될 수 있다.

넷째,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이른바 ‘10년 대주기설’이 있다. 대략 10년에 한 번 꼴로 대폭락이 일어난다는 가설이다.

돌아보니 1979년 10월 26일 사건을 전후해 주식시장이 대폭락해 요동쳤던 일이 생각났다.

김대중 총재의 예측과 달리, 1988년 하반기부터 주식시세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피해자가 속출하자 1988년말 정부는 주식시장 폭락을 막기 위한 단기처방을 써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대폭락이 전국을 강타했다.

여유자금 갖고 나름의 규칙정해 투자해야 실패 적어

주식투자는 자본주의의 기초다.

한 사람이 많은 자본을 한꺼번에 동원하기 어려우므로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조금씩 모아서 회사를 차리라는 것이 주식회사제도의 취지와 목적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기자를 반 자본주의자라고 매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 주식투자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다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심각한 사회경제적 부작용에 비추어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보자는 취지일 뿐이다. 이른바 개미군단들이 어느 날 ‘깡통계좌’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고 나름대로 규율을 정해 놓고 여유 자금을 가지고 투자해야 실패할 가능성도 낮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작은 것이다.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피해자들만 5,252명

다시 이명박 후보의 얘기로 돌아간다.

감히 이명박 후보를 무조건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의 주가지수 3천포인트 전망이 우리 경제에 대한 그의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가운데 나온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서민들이나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유인작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

BBK와 관련이 있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은 5,252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의 회사에 소액투자자들이 투자할 때 30대 중반의 젊은 사람 얼굴만 보고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건설 사장에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이명박 후보를 보고 투자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가 지수가 3천 포인트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견하고 투자를 권유했다가 상황이 빗나가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 규모와 피해자의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예측을 불허할 것이다.

주식시장, 단기부양책 부작용 빨리 나타나

이 씨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스타일로 봐서,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이 노무현 정권을 향해 합리적인 근거없이 비판해 온, 인기영합주의(populist) 경제정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 그 속에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이나 내수경기 활성화 대책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부작용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 부작용이 가장 빨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나타날 곳이 주식시장이 될 것이다. 그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 우리나라 주식시장 대폭락 10년 주기설도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김대중 전 총재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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