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솔직히 저는 전 세계의 축제라는 월드컵이 이번 주 토요일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TV 광고는 이미 예전부터 월드컵 특수에 편승하려는 포맷들로 넘실거렸고, 방송사들 역시도 작은 연관점이라도 어떻게든 부각시키려는 특집들을 편성하고는 있지만 제 눈에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의 열기는 갑자기 더워진 요즘 날씨만도 못한 것 같아요. 그것이 단독 중계권을 따낸 SBS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타방송사들의 다소 소극적인 태도 때문인지, 너무나 머나먼 곳에서 열리는 탓에 직접적인 경험을 만들 수 없는 거리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막상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시작되면 대한민국은 또 다시 축제의 장으로 변하겠지만 그 이전의 분위기는 확실히 고요하기만 해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아니 더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 방송국들은 서로 앞다투어가며 TV 프로그램을 서서히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바로 이런 잔치판을 준비하기 위한 군불 때우기에 들어갔습니다. 연예인들의 응원 메시지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각종 축하공연, 과거 경기 영상 편집, 선수들의 인터뷰와 과거담 회고 등등의 익숙한 포맷들이 넘쳐나고 있죠. 비록 한번 보면 그 전개와 결과가 뻔히 보이는 얄팍한 구성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상하지만 익숙한 프로그램들이야말로 추석의 성룡 영화처럼 월드컵 기분을 내게 해주는 장치인 것은 사실이잖아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붉은 악마의 함성, 월드컵 열기의 출발점이 바로 2002년이었고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모두 그 시간에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순간을 상기하며 또 한 번의 동참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손쉽고도 효율적인, 그리고 안전한 전략일 겁니다. 실제 방송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 역시도 4년 전 독일에 이어 이번에도 남아공행 비행기에 승선한 이들보다는 이젠 현역에서 물러나 제2의 인생을 기획하고 있는 2002년의 용사들이 대다수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16강 실패라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좌절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선수들을 좀 더 알고, 좀 더 이해하며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4년 전의 선수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국가대표팀이 얼마나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우리 앞에 등장했는지를 알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4년 전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독일 땅에서 태극마크에 부끄럽지 않게 뛰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접근법을 지금 TV에서는 볼 수 없어요. 여전히 화면은 어퍼컷을 날리는 히딩크의 모습이 가득하고, 붉은 물결로 넘실거리던 경기장 전경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과거를 팔아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좀 지겨울 정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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