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에 올 북한 대표단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포함됐다는 보도다. 대표단은 20여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단장을 맡은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명목상 최고위급 인사이다.

북한은 당이 국가 위에 있는 전형적인 20세기형 공산주의 국가이므로 국가수반이 갖고 있는 권력의 크기가 당의 실세보다 적다. 그러나 어쨌든 국가수반이 오는 것이므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단에 최룡해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나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등이 포함된다면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인 것 같다. 다만 최룡해가 조선노동당의 핵심요직인 조직지도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제재 대상이라는 점은 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서의 이유로 김영남 상임위원장 자신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적어도 친서 등의 형태로 김정은의 정확한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동아일보 등 언론은 북한이 우리 정부가 ‘비핵화 논의의 입구’로 규정하고 있는 핵 동결 논의에 응할 의사를 보이고 그 반대급부로 대규모 경제적 지원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어쨌든 김영남 위원장이 전달할 김정은 주장의 상당 부분은 대북제재 효과의 축소에 맞춰질 것이라는 추론은 합리적이다.

대북제재는 결국 북미대화를 통해서만 실질적으로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평창동계올림픽에 올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북한 대표단과의 대화 가능성이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물론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북미대화를 통한 상황의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일보 등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우리 정부에 북한 측 인사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자신의 역할을 북한에 대한 견제로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9월 제17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영남 상임위원장 (연합뉴스)

미국 내의 상황도 북미대화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 발표 때 탈북자 출신 인사를 직접 소개한데 이어 지난주에는 탈북자 8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환담을 나누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은 잘 진행될 수 있겠지만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리 정부에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미군사훈련의 조속한 재개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주한미국대사 내정 취소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북미대화를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애초 미국 일부 언론은 빅터 차 석좌의 내정 취소 이유를 ‘코피 작전’ 등 대북 군사옵션 활용 등을 둘러싼 이견에 의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빅터 차 석좌의 내정 사실 자체를 부정했고 우리 정부의 외교소식통도 빅터 차 석좌의 낙마 문제가 대북전략에 대한 이견과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기류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개인 문제가 낙마 사유였음에도 불구하고 빅터 차 석좌 측이 정책적 견해 차이로 이를 포장해 일종의 논점 흐리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주말을 경유하면서는 또 다른 주장이 나왔다. 마이클 그린 CSIS 부소장이 동아일보 5일 지면에 실린 인터뷰에서 빅터 차 석좌의 내정 취소가 백악관 내 국내파와 국제파의 분열에서 비롯됐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마이클 그린 부소장은 각각 국내파와 국제파로 지칭하였지만 이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과거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개입주의적 정책을 주도한 인물들과 ‘극우포퓰리스트’로 불리는 고립주의자들의 구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그린 부소장의 주장은 이 구도에서 빅터 차 석좌가 전자의 입장을 취한 게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빅터 차 석좌의 거취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하여간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악관의 대외정책이 내부에서조차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잡고 있다고 봐야겠지만 내부의 입장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본격적인 북미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만일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대화의 모멘텀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후 기간 동안 동아시아 정세는 일촉즉발의 국면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정황이 결국 북미대화를 가능케 하는 일종의 레버리지로 작용할 가능성 또한 고려해볼 수는 있다. 이렇게 돌고 돌아 기적적으로 북미대화 국면이 열린다고 해도 넘어야 할 장애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북미대화의 방향이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의사만 반영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북한은 핵동결 상태를 장기간 유지한 상태로 미국을 향한 위협 정도의 조정 정도를 제재 축소와 맞바꿀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핵동결’을 입구로 한 대화 국면이 시작만 될 뿐 ‘비핵화’라는 출구가 목전에 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핵문제가 해결의 프로세스가 진행이 되지 않고 평창동계올림픽의 결과가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것에 머무른다면 문재인 정권은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이다. 그렇기에 북미대화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보다는 한국이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춘 북미대화를 추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지금 상황에선 마치 바늘구멍에 낙타가 지나가는 것을 모색하는 것에 비유할 만큼 쉽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이 상황을 여야의 소모적인 정쟁이 아니라 실질적 해결을 모색하는 장기적 관점을 우리 정치가 갖기 위해서는 결국 평화군축과 연동된 비핵화라는 근본적 대책을 누군가는 강하게 요구하고 이를 밀어 붙일 수 있는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주국방을 말하는 문재인 정권이 이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런데 현재 원내에 이를 가능케 할 세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 국면이 지나면 국회는 사실상 과반을 둘러싸고 범여권과 야권이 대립하는 양자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의 타개책 중 하나로 민주평화당 측에서는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꾸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당은 정체성이 달라 공동교섭단체 구성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최소한의 고려라도 해보려면 두 당이 공통적 인식을 갖출 수 있는 대북정책 문제가 접점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러자면 서로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 실제 협의가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지만 정치권이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여러 파격적 시도를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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