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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 ‘막말 김연아슨상’의 충격적인 꿈[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문화평론가 | 승인 2010.06.10 10:19

사람이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세계 최고까지 될 정도면,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종류의 정신적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서 모종의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 인생 그 자체에서 숭고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주 <무릎팍도사> 김연아 편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녀는 지난 1편에 이어 자신의 삶을 웃음과 함께 담담히 말해나갔다. 1편과 같은 눈물은 없었지만, 여전히 삶 자체에서 오는 울림이 있었다.

그런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월을 견뎌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치열하게 몰두하면서 살았던 사람이고, 그건 시간을 대단히 압축적으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나 같은 일반적인 사람이 몰두할 수십년 치를 그녀는 십수년을 꽉 채워 경험했을 것이다.

또 그녀는 경기 때마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그것을 이겨냈던 사람이다. 부상과 뜻하지 않은 패배 등 좌절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 체력이 탄탄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갖은 오해와 악플에 시달리는 과정에서도 정신이 단련됐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울림이 있었고, 그 모든 상처를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표현하는 그녀가 대견해보였으며,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한 꿈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 ‘막말 김연아슨상’의 대인배 웃음 -

김연아는 그동안 경기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고 쿨하게 말해서 얼음같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무릎팍도사>에서 그녀가 사실은 얼마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얼마나 자책하는지, 얼마나 맹렬하게 승부에 임하는지가 나타났다.

그녀는 올림픽이 끝난 후 엄청난 허탈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건 그만큼 올림픽 승부에 초인적인 집중을 했었다는 얘기다. 올림픽 직후 세계선수권 대회는 스트레스 때문에 나가기 싫었다고 했다. 첫 번째 경기를 7위로 망친 다음엔 기권하고픈 심정까지 들었다고 했다. 부담과 스트레스 속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가슴엔 고통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통을 이겨낸 정신의 크기,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더욱 보기 좋았던 건 연거푸 작열한 ‘막말’이었다. 김연아는 ‘쪽 팔린다’, ‘쩔었다’ 등 자신의 심경을 거침없이 말했다. 그녀 입에서 ‘돈연아’가 나왔을 때 MC들은 사색이 되었다. 프로그램은 ‘生말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선사했다. 그것은 버릇없음이 아닌 소탈함, 솔직함으로 느껴졌다.

대중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가식적인 모습이다. 똑같은 스캔들이라도 거기에 가식의 느낌이 들어가면 폭발력이 배가된다. 예컨대 똑같은 병역문제라도 유독 유승준이 비난을 많이 당하는 이유, 혹은 아이비가 과거에 그렇게 많은 악플을 받은 이유가 다 가식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가식적으로 꾸미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캐릭터들도 악플을 쉽게 받는다.

반면에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은 비록 잘못이 조금 있더라도 사랑 받는다. 인간적으로 정이 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 느낌을 꾸밈없이 말하는 김연아에게선 그런 것이 느껴졌고, 그렇게 많은 스트레스와 오해 속에서도 그런 밝음을 유지하는 그녀가 대견했다.

그녀는 자신이 CF 많이 찍은 것 때문에 ‘돈연아’라는 욕을 먹는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그 유난히 큰 웃음소리에서 울음소리를 들었다. 나도 온갖 악플과 오해를 원없이 받아서 완전히 단련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도 악플이나 오해에서 상처를 받는다. 김연아라고 다르겠는가. 스트레스도 받고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보통 연예인들은 악플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많이 보인다. 하지만 김연아는 그것을 큰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이야말로 ‘대인배’의 풍모였다.

   
 
- 김연아의 꿈 -

프로그램은 마지막으로 김연아에게 최종적인 미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 질문에 대한 김연아의 답이 놀라웠다.

“제가 쌓아온 경력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항상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답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하면 보통 어떤 높은 성취를 거론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겸손’을 말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김연아편 1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고생담은 웃으며 말하다가 타인을 이야기할 때 눈물을 흘려 예기치 않은 감동을 줬었다. 이번에 미래의 꿈을 ‘겸손’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예기치 않은 충격이 느껴졌다. 겸손이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연아가 이번 주 <무릎팍도사>에서 보여준 코드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는 꾸밈없는 솔직함, 둘째는 겸손. 솔직함이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은 위에서 얘기했다. 겸손도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다. 겸손의 반대인 ‘거만’을 보여줬을 때 대중은 그를 질타한다. 반대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

타인을 위해서 눈물 흘리고, 자신의 고생과 악플에 대해선 호탕하게 웃어넘기고, 꾸밈없이 솔직하며, 꿈이 겸손이라고 말하는 이 어린 선수에게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함까지 갖췄다. 이번 <무릎팍도사>가 보여준 김연아의 모습은 가히 이상적인 롤모델이라 할 만했다. 무의미하게 교과서 달달 외우는 것보다 이런 모습을 보며 공감하는 것이 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겠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문화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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