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예상되었던,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전개이기는 합니다. 아무리 동이가 점점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창작의 영역으로 가고 있다 해도 수많은 사극에서 되풀이되었던 인기 소재, 장희빈의 몰락이라는 중심 줄기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단지 그 시기와 방법만이 문제였을 뿐, 이소연의 장옥정은 동이가 숙종의 품에 안기기 위해 극복해야 했던 장애물로서 기능하는 것이 그 시작에서부터 정해져있던 피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동이에서 장옥정이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은, 아니 그녀가 악녀로 각성하기 시작한 후부터 그녀를 그리고 있는 방식은 여러모로 불만이에요. 마치 제작진이 작정하고 그녀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금 동이의 장옥정에 대한 태도는 전형적인 용두사미이자 꼬리 자르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미진한 묘사들뿐입니다. 시작만 거창했을 뿐이지 그동안 이 시대를 그렸던 사극에서 이렇게 장희빈이 밋밋하게 그려졌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동이가 궁에서 자리를 잡아 숙종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렇게도 꿈꾸던 중전의 자리가 가까이 올수록 취선당의 안주인은 서서히 시시하고 밋밋한 악녀로 변해버렸습니다. 여러 음모에 발을 들여놓은 악녀이지만 유능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한, 오라버니와 파당 싸움에 이끌려 그저 차후 승인과 고개 끄덕임만 반복하는 얼굴 마담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녀의 욕심과 야망은 여전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에 있어서 장옥정은 철저히 벗어나 있습니다. 그저 악녀는 악녀이지만 최대한 때를 묻히기 싫다는 듯이 고고하게 경계를 두고 있을 뿐이죠.
점점 더 단순해지고 뻔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멋들어지게 등장했던 우아하고 고혹적이면서도 당당했던 그녀는 이젠 기존의 장희빈을 그렸던 사극에선 그녀를 뒷받침하던 가장 큰 힘이자 버팀목으로 반드시 언급되었던 세자인 아들을 향한 모성도 제거되었고, 숙종에 대한 연모의 마음도 질투로 변해버리고, 미천한 출신을 짐작하지 못하게 했던 똑똑함과 신중함도 사라진 채, 오로지 그나마 남아 있던 중전이 되겠다는 일념만을 간직한 욕심꾸러기로 변해 몰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 역사적 사실을 꼬아놓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니면 지나치게 동이를 슈퍼우먼으로 바꾸어놓고, 숙종은 희대의 로맨티스트로 그려놓은 제작진의 패착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쪽의 능력만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한 사람의 일면만을 미화시킨 결과 그 페이스에 장단을 맞춰야만 했던 악역 장희빈만 점점 더 바보로 변하는, 동이는 이야기 구조 전체가 갈수록 기이하게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이럴 양이었으면 차라리 전통적인 모습의 완전 못돼 먹은 장희빈이 더 매력적이었을거에요. 사극의 틀을 가지고 판타지를 꿈꾸는 동이에서 장희빈은 가장 많이 손해를 본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망가져버린 장희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처음의 장점을 잘만 유지할 수 있었다면 또 다른 미실이 될 수 있었던 등장 초반 장옥정의 포스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나름의 호연을 펼친 이소연의 열정이 너무나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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