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안철수 대표의 독단적 행보가 반발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어제는 초유의 전당대회 취소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대로라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시너지 없는 통합이 될 거란 지적이 제기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31일 오후 안철수 대표가 의장으로 있는 국민의당 당무위원회는 4일로 예정됐던 전당대회를 취소했다. 통합반대파의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 1000여 명이 포함돼 있어 '이중당적' 논란이 있다는 이유였다. 안 대표의 예상과 달리 전당대회에 참석할 자격을 가진 대표당원 중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당원이 많았고, 자칫 통합 부결이나 정족수 미달 등이 벌어질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중당적이라는 안철수 대표 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 정당법은 이중당적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민주평화당은 아직 창당하지 않은 상태다. 창당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고 해서 있지도 않은 당의 당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즉, 전당대회 취소는 만일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안 대표 측의 임시방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당대회를 취소한 안철수 대표가 이번에는 당헌까지 개정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안 대표 측은 4일 당무위를 열어 당헌 제5조에 '전당대회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당의 합당과 해산에 관한 사항'을 첨부할 예정이다. 이번 전당대회 취소로 13일로 잠정합의된 바른정당과의 통합 날짜를 지키기 어렵게 되자, 전당대회를 거치지 않고 통합을 진행하기 위한 꼼수를 부린 것이다.

급작스러운 전당대회 취소는 아직 통합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은 중재파 의원들의 원성을 샀다. 중대파로 분류되는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지금 통합 과정이 정상적이진 않은 것 같다"면서 "이런 식으로 통합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당헌당규를 바꿔서 계속 한다는 것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중재파의 합류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중재파는 안철수 대표가 사퇴하면 통합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는데, 안 대표는 통합 후 사퇴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반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내심 안 대표와 통합정당의 공동대표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새다.

박주선 국회 부의장, 김동철 원내대표, 이용호 의장, 주승용, 황주홍 의원 등 중재파 의원들은 1일 오찬을 갖고 거취를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최근 안철수 대표와 거리 두기에 나선 송기석 의원도 참석한다는 소식이다.

사실 안철수 대표가 통합 추진 과정에서 당 소속 의원들의 원성을 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안 대표의 통합 추진 과정이 초반부터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 측은 지난해 10월 조선일보를 통해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여론조사를 흘렸다. 양당이 합당하면 자유한국당을 누르고 지지율 2위 정당이 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을 중심으로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제기되자, 안철수 대표는 지도부의 권한으로 찍어누르는 태도까지 보였다. 지난해 12월 20일 안 대표는 통합 찬반 여론을 수렴하는 의원총회를 오후 2시 예정해 놓고, 오전 11시 15분 기습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당원투표를 통해 통합 찬반을 가리겠다는 '통보'였다. 의총에 참석하라는 요구에는 "이미 입장을 밝혔으니 의원들의 뜻을 모아 달라"고 일방통보했다.

통합반대파의 목소리에는 철저히 귀를 막았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추진협의체에도 자신과 가까운 이언주, 이태규 의원만을 배치했다. 전당대회 의장이었던 통합반대파 이상돈 의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당대회를 여러 장소에서 동시개최할 수 있도록 당규를 개정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이번에는 전당대회를 피하겠다고 당헌까지 바꿨다.

이처럼 안철수 대표가 추진한 바른정당과의 통합의 길은 독단과 꼼수로 점철됐다. 안 대표의 행보에 대해 '제왕적 당 대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이룬다고 해도 기대효과는 적을 것이란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국민의당 이혼 과정이 너무 상처투성이"라면서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 국민에게 감동적으로 다가가야 시너지가 있는 건데, 그런 여지가 다 없어져버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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