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를 ‘계급’으로 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금수저형 히어로다.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최첨단 기술력을 동원해서 영웅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흙수저 스타일의 히어로. 스파이더맨은 거미인간 가면을 쓰면 빌딩숲을 훨훨 날아다니지만 가면을 벗으면 학자금을 고민해야 하는 ‘보통 사람’ 유형의 히어로다. 이런 유형의 히어로는 초능력과 자본주의에서의 생존 능력이 별개로 취급받는다.

영화 <염력>은 후자, 흙수저형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족주의의 강화를 도모한다. 십 년 전 생이별한 딸과의 상봉을 통해 부녀 사이의 잃어버린 가족애를 영화 안에 담아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스타일이다.

한데 <염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외양은 히어로물이 분명하지만 그 속내는 히어로물이 아니다. <염력>에는 ‘금권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서사를 담는다. ‘용산참사’와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염력이라는 초능력이 생긴 주인공 석헌(류승룡 분)과 그의 딸 루미(심은경 분), 루미의 이웃인 철거민에게 보상금을 제대로 지금하지 않은 악덕 건설회사는 금권주의 혹은 배금주의를 상징한다. 철거민은 법 집행에 순응하지 않는 불법 점거자로 둔갑되고, 악덕 건설회사와 용역업체는 ‘법 집행’이라는 명분 아래 불법을 저질러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영화 <염력> 스틸 이미지 (사진제공=NEW)

여기에는 당연히 ‘억울함’이라는 정서가 자리 잡는다. 보상금을 받지도 못한 처지도 모자라, 불법을 저지르는 용역 업체에 의해 살던 곳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억울함’ 말이다. 이런 정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철거민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든다.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는 용역업체의 만행에 맞서기 위해 철거민은 화염병이라는 수단을 강구하면서 이 영화는 현실 속 ‘용산참사’와 오버랩하기에 충분하다.

철거민을 괴롭게 만드는 건 표면적으로는 용역업체가 휘두르는 물리적인 폭력이다. 힘으로 철거민을 제압하는 용역업체 일당이 ‘갑’, 이들에게 휘둘리는 철거민이 ‘을’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염력>은 갑과 을의 투쟁으로 보일만하다.

하지만 <염력>을 연상호 감독의 전작인 <부산행>과 연결시켜 살펴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산행>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좀비에게 희생되는데, 그 시발점은 한 제약회사로부터 출발한다.

<부산행> 초반부에 한 고라니가 로드킬을 당하지만 고라니가 죽지 않고 공포스러운 눈빛을 뿜어내는 장면을 되돌아보라. 제약회사로부터 시작된 잘못된 약품 실험이 대한민국 전역을 좀비라는 공포에 떨게 만들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좀비의 시발점이 되는 제약회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사회적인 책임을 묻는 카타르시스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 <염력> 스틸 이미지 (사진제공=NEW)

다시 <염력>으로 돌아가 보자. 철거민을 괴롭히는 용역업체 작업자들은 진정한 ‘갑’이 아니다. 건설회사라는 갑에게 고용된 ‘을’이 철거민이라는 ‘병(丙)’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파악해야 옳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용역업체 직원이 갑이 아니라, 이들로 하여금 조속한 철거를 지시하는 건설업체라는 금권주의가 진정한 ‘갑’이라는 이야기다. <염력>을 이렇게 <부산행>과 연결시켜 보면 철거민이라는 ‘병’은 ‘갑’과 투쟁하는 게 아니다. ‘병’은 용역업체라는 ‘을’과 투쟁하는 것이다.

결국 철거민이 상대하는 대상은 용역업체라는 ‘을’이지 ‘갑’은 그림자도, 실체도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꼼꼼하게 뜯어보면 정유미가 연기하는 ‘홍 상무’라는 캐릭터도 사장이나 CEO가 아니라 그저 건설회사라는 금권주의의 하수인, 혹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철거민은 보이지 않는 갑이 진정한 투쟁의 근원임을 모르고 을에 불과한 용역업체를 갑으로 인식한다. 을과 죽기 살기로 투쟁하고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 철거민과 루미,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석헌이 진정으로 맞서야 할 대상은 용역업체라는 을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애석하게도 영화는 병이 갑과 맞서는, 철거민으로 하여금 정든 삶의 터전을 강제로 떠나가도록 만드는 실체인 금권주의라는 진정한 갑과의 투쟁은 배제한 채, 금권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한 용역업체와의 물리적 투쟁에 영화의 대부분의 시퀀스를 할애하고 만다.

이는 <베테랑>에서 을에 불과한 황정민이 진정한 갑인 유아인과 맞서는 서사 구조와 비교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개 형사가 금권주의의 상징인 재벌 2세에 맞서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베테랑>의 통쾌함은, 정의로운 ‘을’이 불의한 ‘갑’의 금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다는 서사 구조에 빚진다.

영화 <염력> 스틸 이미지 (사진제공=NEW)

하지만 <염력>에서 철거민이 투쟁하는 ‘갑’이 진짜 갑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을’에 불과한 용역업체와의 투쟁이지, 용역업체를 고용하고 공권력인 경찰마저도 좌우하는 진정한 ‘갑’인 금권주의와 주인공인 석헌과의 투쟁은 영화에서 그닥 찾아볼 수 없다.

<염력>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바라고자 했다면 금권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한 홍 상무, 정유미와 석헌, 류승룡과의 맞대결이 흥미진진했어야 했다. <염력>에서는 진정한 ‘갑’과 ‘병’의 투쟁이 배제되다시피 했다. <부산행>에서 좀비가 창궐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제약회사에게 그 누구도 뚜렷하게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염력>의 과오는 보이지 않는 진정한 갑과의 투쟁을 배제한 채 갑의 하수인에 불과한 용역업체라는 을과의 투쟁에 서사의 대부분을 할애한 데 있다. 갑의 하수인에 불과한 을과의 투쟁은 냉정하게 말한다면 참된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 영화의 별점: ★★☆ (5개 만점)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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