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는 17대 대통령선거의 핵심 아이콘이자 알파와 오메가다. 도대체 이명박 후보와 관련되어 있다는 BBK 외 그 어떤 논의도 찾아 볼 수 없다. 유권자들의 대통령 선거 이미지는 오로지 BBK와 이명박의 거짓말 외 아무것도 없다. 어느 나라에서는 대통령선거 자체가 그 국가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하는 주요 계기로 활용된다는데,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어째 오늘을 진단조차 하지 않고 내일의 장밋빛도 전하지 않는, 과유불급의 ‘이명박 이미지 만들기’만 있는지 통탄지경이다.
정치공학적 재미도 전멸되었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통합논의도 사라져버렸고, 정동영·이인제·문국현의 단일화 논의도 엎어졌다. 그래서 과정에서 졸이는 가슴, 기대와 좌절의 드라마조차 없는 진흙탕 개싸움만 바라보자니 분통이 터진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적 서비스 자체가 상실된 선거를 강요하는 정치인들이 밉다.
‘이명박 이미지’에 갇힌 대선보도 프레임
당사자들이야 피를 말리는 접전이겠지만 관전자들, 또는 소극적 관련자로서 유권자들은 볼 거리 읽을거리 들을 거리가 거의 없는 지경에서 이번 대통령선거를 구경하는 중이며, 갈수록 드라마의 고무줄 편성처럼 질질 늘어져 관심을 접게 만든다. 국민들을 정치적 허무주의에서 정치적 무관심 지대로 밀어붙인다.
이제는 단 하루라도 다른 후보들의 자기 이야기도 듣고 싶다. 맨날 이명박 후보만 물고 늘어지는 꼴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다양한 자신들의 정책적 비전을 섞으면서 이명박을 비난 비판한다면 좀 더 신뢰가 생길텐데.
한나라당 국회의원 남경필이 일요일 저녁 이명박 지지 찬조 연설에 나와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정동영 후보를 향해 “이명박이 거짓말쟁이인 것을 국민들이 다 안다 … 제발 정동영은 자기 이야기 좀 해라”라는 뉘앙스를 실어 정동영의 선거전술에 대해 조언(?)을 한다.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 남경필이 바른 말 하네 … 다른 한 편으로 정동영이 남경필한테까지 갈굼을 당하는구나였다.
‘눈길 끄는’ 남경필의 찬조 연설
비록 남경필의 조언이 정동영의 귀에 들어갈 수 없을지언정, 그것이 정동영을 갈구기 위한 발언일지언정, 의미 있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정동영은 각종 토론회와 연설 공간에서 ‘제가 잘못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더 나쁜 놈이요 거짓말쟁이다. 그러니 나에게 기회를 달라’는 연설과 토론 구도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정동영이 꿈꾸는 세상과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정동영은 어떤 준비과정을 거칠 것인지에 대한 과정적 수단과 목표 그리고 기대효과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았다.
정동영은 정동영을 말하고 문국현은 문국현을 이야기하라
그렇다고 문국현도 면죄의 대상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꼭 투표장에만 들어가면 하나의 인식프레임이 갑작스레 부각되는데, 그것은 바로 ‘수권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이명박도 이명박, 정동영도 이명박, 문국현도 이명박이니 문국현의 정책도 없거나 전혀 부각되지 않을뿐더러, 문국현의 수권능력에 대한 인프라와 철학도 부각되지 않는다. 막연히 수권능력 없는 권영길과 문국현이라는 부류로 분류될 뿐이다.
하루 남았다. 이제는 정동영이 정동영을 말하고 문국현이 문국현을 이야기하라. 그 속에 이명박을 섞어라. 정동영도 이명박을 말하고 문국현도 이명박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로 끝내라. 권영길의 독야청청이 아름다운 이유를 정동영도 문국현도 단 하루라도 보고 배워라. ‘한미FTA를 유일하게 반대하는 권영길’처럼 하나라도 국민들에게 이명박 외에 한 말을 기억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