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재난, 현직 여성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가 뉴스를 점령하고 있지만 여의도 정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셈을 하기 바쁘다. 다당제 구도와 정계개편, 개헌 논의까지 겹쳐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집안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다. 현직 의원들이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되면 현재의 구도가 흔들려 원내 제1당의 지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5월은 지방선거를 바로 앞둔 시기인데다 국회 하반기 원구성 및 의장 선출 관련 논의가 진행된다.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면 양당은 현재의 의석을 유지하면서 상대 정당의 의석수가 줄어들기를 기대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역단체장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전에 사퇴하겠다는 분이 있다”며 “당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라”고 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확실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태로 경선을 치러볼만한 지역이 대구경북 뿐인데 벌써부터 출마희망자들 간의 과열경쟁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양인재개발원에서 2월 임시국회 전략수립을 위해 열린 의원연찬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급기야 경북지사 출마를 노리는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의 경우 당장 국회의원직을 내놓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배수의 진’을 치는 나름의 절박감을 과시하며 경선에서 승기를 잡아보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철우 의원의 국회의원직 사퇴가 현실이 되면 다른 출마 희망자들도 비슷한 수준에서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단결력을 유지해 지방선거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1당 지위를 회복해보자는 자유한국당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지방선거 이후 사퇴한 후보들의 지역구에서 치러질 보궐선거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게 홍준표 대표의 계산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차기 국회의장을 비롯한 원구성 협상도 문제지만 지방선거 기호 문제도 있다. 지방선거 정당투표 기호와 후보자별 기호는 후보자 등록이 끝나는 5월 25일을 기준으로 원내의 경우 의석수에 따라, 원외의 경우 가나다순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의석 수 차이는 단 3석이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기호 2번보다는 1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 현재 여의도 정치는 다당제구도이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의 사정까지 더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이를테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문제이다. 양당의 통합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거둘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에 통합으로 가는 하나의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통합의 중요한 변수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3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새로운 통합 정당의 공동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상당히 강한 톤으로 제기했다. 국민의당 내 이른바 ‘중재파’는 백의종군을 주장하고 있고 안철수 대표 본인도 이를 고려하고 있는데 유승민 대표가 이에 제동을 건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유승민 대표의 주장에도 불구 통합 이후 백의종군을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개의 정치문법에선 서로 대표 권한을 독점하겠다며 싸우는 게 일반적인데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이런 상황은 양대 세력의 처지와 지방선거 성과와 연동해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새로운 통합정당이 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표는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유승민 대표 단독 체제로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면 지방선거 이후 국면은 안철수 대표 쪽으로 무게중심추가 확 기울 것이다. 그렇잖아도 통합정당에서 현재의 바른정당 소속 인사들은 소수파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자유한국당의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판국이다. 따라서 유승민 대표 입장에선 패배의 책임을 두 사람이 함께 지는 게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안철수 대표 입장에선 지금 당장 책임을 맡지 않는 게 여러모로 좋다. 알맞게도 국민의당 내 중재파들이 명분도 제공하는 상황이다. 중재파의 한 사람인 이용호 의원은 안철수 대표 백의종군을 주장하면서 유승민 대표도 함께 백의종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제3의 인물이 새로운 정당의 당권을 쥐어야 지방선거와 이후 총선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 의한 것일 게다.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이 되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들이 두 명이나 지방선거를 그냥 넘어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결국 지방선거 출마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은 김동철 원내대표.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와 행보를 함께하고 있는 국민의당 김관영 사무총장의 경우 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출마 선택지로 서울시장과 함께 부산시장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유승민 대표의 경우 지방선거에 출마한다면 서울시장 외에는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안철수 대표는 서울시장은 물론 부산시장에도 출마할 수 있다. 현역 의원이 아니어서 포기해야 할 반대급부가 크지도 않다. 새로운 통합정당의 입장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당선 가능성을 논하자면 상대적으로 후자의 경우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합 반대파들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평화당은 중재파들이 안철수 대표에 밀려 떨어져 나오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으로 나선 현역 의원들의 숫자는 총 16명이다. 언론은 민주평화당이 20석 이상을 확보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경우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망의 의미는 다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라는 양대 정당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보다 확실해진다. 민주평화당은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개혁적 성향의 정치세력이라는 자기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국회가 양쪽으로 갈릴 때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 등과 같은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평화당이 가담한다고 가정했을 때 국회 과반 확보가 가능해야 향후 대여협상이 수월하다. 그런데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안철수 대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통합정당이 자유한국당과 특정 사안에서 한 편에 섰을 때 과반 확보가 가능한 정도로 의석수가 확보돼야 한다. 이런 상황이니 이른바 중재파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런 현실은 제3당의 존립을 위해 통합을 선택했다는 안철수 대표 등의 주장과는 달리 국회 내의 구도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 구도로 재편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앞으로 예정된 개헌을 둘러싼 논란은 이를 가속화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논의 자체에 불참하겠다는 애초의 입장에서 개헌 논의를 이념 논쟁을 전환해 지방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 통합정당은 자칫 잘못하면 이런 이념공세에 들러리를 서게 될 수도 있다. 단지 제3당이라는, 주요 양당과 구분되는 존재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안철수 대표의 3당 구상은 여전히 성공을 말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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