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거짓말, 탈세, 섹스스캔들.

미국에서는 흔히 정치 라이벌 즉 정적(政敵)을 제거할 때,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발견하거나 드러나면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미국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정치 선진국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사람들이 이중적인 도덕 기준을 적용하는 데도 원인이 있는 듯하다.

거짓말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미국의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지적이고 능력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그의 해박한 국제관계 지식과 전략적인 사고(思考)였다.

1972년 동서 냉전의 절정에서 그는 ‘적(敵)의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고전적 병법 이론을 적용, 키신저 국무장관의 왕복외교(Shuttle Diplomacy)를 통해 당시 '중공(中共, People‘s Republic of China)’과 전격 수교함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는 퇴임 이후 국제문제 분석가로 변신, 뉴욕타임스의 고정 필진으로 또 한번 이름을 날린다.

▲ 경향신문 12월17일자 5면.

미국의 대외 정책 등에 관해 활발한 저술활동도 벌인다. 그의 저서중 하나인 ‘순간을 포착하다(Seize the Moment)’는 우리 외교관들이나 학자 등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날카롭고 깊이있는 국제문제 분석 기사를 보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가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임기를 마쳤으면 유능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닉슨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가 출신 성분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지만 성실과 노력으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몇 안되는 미국 대통령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의 이중잣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터(Watergate) 도청 사건 그 자체 때문에 탄핵 일보 직전에 물러 난 것이 아니다. 그가 탄핵의 위기에 몰린 것도, 그리고 탄핵을 당하기 전에 물러난 것도 바로 거짓말 때문이다.

그가 만약 문제의 도청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보고 받았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대통령직에서 쫓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많은 미국 사람들이 평가한다. 평범한 미국 사람들은 평소에 거짓말을 한다. 미국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다.

“나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미국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하물며 미국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바로 이중적인 잣대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정부)의 이런 이중 기준은 인권 문제 등에 있어서 미국 국내에 적용할 때와 다른 나라에 적용할 때 다르게 나타나 국제적인 비난을 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중기준이 적용되는 경우가 또 있다.

바로 섹스스캔들이다. 많은 평범한 미국 사람들은 섹스 문제에서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 자신은 섹스스캔들에 연루될 수 있지만 미국의 대통령이나 관직과 공직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런 이중기준의 잣대 적용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예외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른바 르윈스키와의 염문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몰리지 않았던 이유와 배경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클린턴 대통령 시절 경제상황이 좋았던 것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다.

탈세 : 미국시민의 자격도 인정받지 못하는 중대 범죄

그런데 미국 사람들한테 이중기준이 절대 통하지 않는 죄악이 하나 있다. 바로 탈세이다.

미국에서 탈세하면 대통령을 포함한 어떤 공직에도 나가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탈세한 사람은 미국 시민의 자격도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19일이면 나라의 운명이 바뀔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이명박 후보의 언행과 그를 둘러싼 의혹들을 보면서 자꾸 닉슨과 이명박 후보가 오버랩된다. 그리고 나라의 국제적인 위신과 체면이 걱정된다.

물론 그 전에도 우리나라 지도자나 고위 공직자 중에서 탈세와 거짓말을 한 사람이 없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나라의 망신을 산 사례도 많다. 재벌과 재벌 회장들의 각종 비리도 있었지만 정부의 전·현직 고위 관료가 연루된 탈세 사건 중에서 단연 압권(?)은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1,071개의 차명계좌 이용한 탈세범, 주미 대사 홍석현에 이어 이제 대통령마저

▲ 한겨레 12월17일자 사설.

그는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자신과 형제들이 보광그룹을 소유, 지배하면서 무려 1,071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악랄하고 교묘하게 탈세를 함으로써 법의 심판을 받은 바 있다. 홍석현씨는 항소와 상고를 포기해 바로 실형이 확정되었고 얼마 안되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그를 사면해 주었다.

그런 사람을 장관급 이상의 무게를 갖는 미국 주재 대사에 임명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내정 단계에서 외교의전(protocol)에 따라 주재국 미국의 사전 동의, 즉 아그레망(agreement)도 받기 전에 대사 내정자로 발표한 것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위였다.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이 다 지키는 외교의전 하나도 제대로 안 지키는 나라로 찍힐까 창피스러웠다. 기자가 사대주의 때문에 창피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아니다.

이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미국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

탈세와 거짓말, 위장전입을 일삼은 대통령이 내정, 임명하는 대사들은 주재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런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도록 만든 일등공신은 반성을 모르는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당과 그 후보, 그리고 무늬만 진보이면서 분열만 일삼는 사이비 진보세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주인이면서 선거 때만 일시적으로 주인대접을 받는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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