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월요일의 JTBC <뉴스룸>은 특별했다. 뉴스라는 것이 늘 특별하고, 깜짝 놀라고 또 자주 분노를 안겨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날 <뉴스룸>의 한 꼭지는 그 모든 것을 모두 담은 것이었다. 이날 손석희 앵커는 한 여성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경남 통영지청 소속의 현직인 서지현 검사였다. 손석희 앵커과 서지현 검사가 나눈 대화는 성폭력 피해에 관한 것이었다.

기소권을 가진 검사지만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기소하지 못한, 아니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하고 당연히 사과도 받지 못한 9년 전의 성추행을 고발하러 나선 것이다. 뉴스를 보며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현직 검사가 오죽 답답하면 내부를 벗어나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가 속한 조직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범죄자를 기소할 수 있는 검찰이다. 그 아이러니의 해답을 얻는 데 서 검사는 8년이 걸렸다고 했다.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 속에서 많은 여성이 피해를 당하고도 입을 닫고 산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범법자를 처벌하는 권력을 가진 검사마저 보통의 피해자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검사마저 이런데 일반 여성들은 도대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한편으로는 왜 우리나라 성범죄 형량이 분통 터지게 낮은지도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단지 놀랍다는 말은 얼마나 이 상황을 담기에 부족한지 잘 알지만,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서 검사가 성추행을 당하는 상황은 더욱 그렇다. 서 검사는 8년 전 한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 자리에는 법무부 장관과 그를 수행하는 고위간부가 있었다. 서 검사의 주장에 따르면 바로 그 법무부 간부가 성추행을 저지른 장본인이었다.

그 자리에서 당시 장관은 “내가 이놈을 수행하고 다니는 건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성추행 사실을 알고 한 말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황상 몰랐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사실로 믿을 수 없어 환각이 아닌가 싶었다는 서 검사의 말로는, 가해자는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가 상당히 오래 계속됐다고 한다. 사실 이런 정도라면 주변에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말리지도, 나무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서 검사 자신도 당시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항의를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법무부 장관까지 있는 자리에서 성추행 사실을 항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숨죽이고, 참아야 했던 것이 너무도 기가 막힌 일이다. 이것은 등잔 밑이 어두운 경우가 아니라 아무리 등잔을 켜도 밝아지지 않는 무거운 어둠의 존재를 의미한다.

조직이나 회사 내 성폭력은 대체로 목격자 혹은 예비 가해자들로 인해 더욱 잔인해지는 양상을 띠게 된다. 서 검사 역시 잘나가는 남자 검사들 발목 잡는 꽃뱀이라는 뒷말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성폭력 가해자와 방관자들 사이에 전형적으로 행해지는 매우 익숙한 따돌림이자, 2차 폭력이라 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서 검사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조직 내 성범죄는 그렇게 2차피해로 이어진다.

서지현 검사가 현직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검사를 그만둘 것도 아니면서 방송에 나와 검찰이라는 벽이 높은 조직의 내밀한 비리를 고발한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서 검사가 인터뷰 처음과 끝에 거듭 강조한 말이 있었다. 성범죄를 당한 것은 절대로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확신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은 추행에 그쳤지만, 검찰 내에서 성폭행을 당한 일도 있다는 말도 전했다. 그렇게 모두가 침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서 검사는 자신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8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대단히 이례적인 인사 불평등이 찾아오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검찰의 개혁이 되겠거니 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 검사는 인터뷰 내내 그만이 알 수 있을 온갖 감정을 안으로 삼키느라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검사인 자신이 당한 범죄를 수사하지 못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는 자신을 억누르는 자괴감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서 검사가 말했고 또 자신이 우리에게 꼭 듣고 싶었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를 해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건장해지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엄격해야 하겠지만, 이전에 용기를 낸 서 검사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서 검사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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