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중앙 수비수가 불안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튼실한 허리(미드필더)와는 다르게 다소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고, 그 때문에 '최상의 조합'을 찾는 실험을 최근까지도 계속 벌이는 등 중앙 수비 전력이 크게 안정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나마 확실한 수비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던 곽태휘까지 전열에서 이탈해 불안감은 확산되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주축 플레이어인 조용형의 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파트너 이정수 역시 꾸준하게 제 몫을 다 하면서 조용형-이정수 라인에 코칭스태프는 이번 본선에서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또 한 명의 대표팀 중앙 수비 자원이 있었으니 바로 '파이터형 수비수' 김형일(포항)이 그 주인공입니다. K-리그에서는 꽤 손꼽을 만 한 실력 있는 수비수로 평가받지만 정작 대표팀에 자주 이름을 올리고도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면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특징이나 장점이 뚜렷한 선수이기에 언젠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월드컵 무대에서의 활약을 꿈꾸고 있습니다만 꾸준히 발탁되고도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것은 아쉽습니다.

K-리그를 많이 본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김형일은 프로 무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철저한 무명이나 다름없는 선수였습니다. 187cm의 큰 키를 자랑하며 다부진 체격을 가진 선수이기는 했지만 다소 투박하고 기술이 떨어지는 것이 그의 약점으로 지적됐습니다. 그러나 2007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면서 그의 플레이는 조금씩 다듬어지기 시작했고, 이듬해 포항으로 둥지를 새로 튼 뒤 마침내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급성장하며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스타일에서 벗어나 지능적인 플레이에도 더욱 능해졌고, 공격적인 면에서도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장악으로 세트 피스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 등 3-4년 사이에 김형일이라는 이름 석 자가 K-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떠오르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헤딩 결승 쐐기골을 집어넣은 뒤 흘린 눈물은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당시 병환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며 두 손을 하늘 위로 치켜세운 골 세레모니는 마음 고생을 했으면서도 골로 보답해 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김형일은 '외유내강'형 스타일의 선수로 그라운드에만 서면 승부욕이 무척 강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러한 그의 뚜렷한 장점을 눈여겨보며, 허정무 감독은 지난해 6월부터 그를 대표팀에 발탁하기 시작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7차전에 풀타임 출장해 무실점 활약하면서 대표팀 주전에도 명함을 내미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꾸준하게 대표팀에 발탁되고도 김형일은 세르비아와의 런던 평가전에서 단 10분만 뛴 것을 제외하곤 A매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번 엔트리 발표 때마다 발탁되는 선수이기에 허정무 감독이 '매력적'인 선수로 평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조용형, 이정수에 더 신뢰감을 나타내면서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을 듯 보입니다.

분명히 내부 경쟁이라는 것이 있고, 조용형, 이정수 외에도 강민수, 황재원, 그리고 부상으로 낙마하기 전까지 뛰었던 곽태휘까지 많은 수비수들을 기용해 본 허정무 감독이지만 왜 정작 김형일을 출전시키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인지 궁금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당장 출전해서 좋은 활약을 펼칠 선수를 뽑아 골고루 기회를 주겠다면서 유독 김형일을 아끼는 이유가 뭔지도 궁금합니다. 키가 크고 그 누구보다도 투지 넘치는 수비수이기에 선수용이 아닌 '훈련 파트너'로 데려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중앙 수비 자원 가운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A매치 실전 경험이 떨어지는 김형일을 넣는 것은 이제는 좀 무모해 보이게 됐습니다.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서 올해 단 한 차례도 A매치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선수는 김형일이 유일한데요. 충분히 장점이 있고,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클럽월드컵 등 국제 경험도 현 대표팀 중앙 수비 자원 가운데 돋보이는 면이 있음에도 출전 기회가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형일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벤치에 앉더라도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꼭 경험해보고 싶다”면서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물론 엔트리에 발탁된 모든 선수들이 출전하기 어려운 것이 월드컵이라지만 실전에 뛰기 위해 자신의 진가도 드러내지 못하고 직접적인 경험조차 얻지 못한 것은 다소 냉정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은 26살로 대표팀 평균에 속하는 김형일이지만 4년 뒤에 지금 같은 기량을 꾸준히 유지할지는 모릅니다. 굳은 마음가짐으로 더 좋은 기량을 과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자세가 김형일이 '월드컵을 맞이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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