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권을 두고 ‘좌파 국가 사회주의’라고 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야기다. 가치판단이 아닌 사실판단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국가-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체제는 국가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한, 전체주의적 통치체계가 내면화한 상태이다. 역사적으로는 구 소련 및 유사 체제나 북한 정도가 여기에 들어갈 것이다. 중국은 애초 국가사회주의 통치체계를 지향했으나 덩샤오핑을 거치면서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 요즘 내세우고 있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도 말만 요란할 뿐 시장을 맞바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나라들에 비하자면 대한민국은 국가가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거나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기는커녕 최저임금 인상 하나만 갖고도 장기간 몸살을 앓아야 하는 곳이다. 오히려 자본에 치우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문제다. 문재인 정권은 비록 그 시도의 성공 가능성이 의문시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낙수효과와 금융산업 중심 발전전략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깨진 2008년 이후로 상당수의 선진국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걸 ‘좌파 국가 사회주의’로 부르는 것은 그래서 부당하다.

물론 홍준표 대표가 이런 무리수를 강행한 정치적 이유는 분명히 있다. 최근 불거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이런 저런 불만을 자유한국당 지지로 묶기 위한 정치적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최근 지난해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역풍이 가시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2~30대, 3~40대 여성, 수도권 중산층, 중소기업인 및 자영업자 등의 핵심 지지축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가상화폐 논란,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부동산 정책,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인은 ‘국가가 실시한 정책 때문에 개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서사를 재생산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국가주의’란 단어를 꺼낸 배경은 여기에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중앙직능위원회 신년인사회에서 행사장에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어째서 문재인 정권은 시대에 역행하는 국가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가? ‘좌파’와 ‘사회주의’는 그 답으로써 제시된 개념이다. 즉, ‘종북’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모든 서사가 집약될 수 있는 인화성 강한 이슈가 바로 평창동계올림픽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다. 문재인 정권은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북한에 아부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며, 그래서 사실 이번 동계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고, 이를 위해서 대다수가 2~30대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 정도는 국가적 명분을 동원해 짓밟아도 되는 존재인양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문제가 논란이 된 초기 문재인 정권의 대응을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메달 운운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 뒤늦게나마 청와대가 “언론과 정치권이 제기하는 우려를 귀담아 듣겠다”고 반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는 여자 아이스하키팀 당사자들과의 소통이나 이후의 정책적 배려 등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좌파나 국가주의를 운운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보수세력은 이 문제를 ‘종북’과 연결 짓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의 눈부신 활약을 보라. 조선일보는 23일 인터넷판에 <2030기자의 현송월 단독영상 취재기, 현송월에게 꼭 묻고 싶었는데...>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 기자가 삼지연 관현악단장 직함으로 방남한 현송월과 점검단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지나친 저자세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게 돼 너무 기분이 나빴고 이런 모습을 여자 아이스하키 팀 선수들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평창동계올림픽- 2030-종북을 하나로 묶은 가히 ‘걸작’이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문은 정부 관계자의 말 한 마디, 국정원 요원의 비명 한 마디를 놓고도 어떻게든 문재인 정권이 북한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24일 조선일보는 2013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을 수사하던 국정원 요원이 현송월을 경호하고 있다는 단독 보도를 지면에 실었다. 문재인 정권이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 요원을 오히려 북한 사람을 지키는데 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보도의 근거는 김배곤 민중당 대표 비서실장의 페이스북 글이 유일하다.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에 불과하고, 설사 사실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악의적인 장난질일 뿐이다. 북한 사람이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데 그 사람과 서울 시민들 사이에 그러면 국정원 요원이 아닌 누가 있어야 하나?

홍준표 대표는 연일 언론이 현송월 관련 보도로 뒤덮이고 있다며 ‘평양올림픽’의 현실을 한탄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사례에서 보듯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조선일보이다. 홍준표 대표의 비서실장이 바로 조선일보 출신 강효상 의원이다. 강효상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시절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관련 보도를 진두지휘했다. 척하면 척인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권언유착을 하더니 야당이 되자 전 세계의 골칫거리인 ‘가짜뉴스’의 전형적인 생산 방식을 따르고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점검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 답답한 일은 이런 악선동이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것이다. 개별 사건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윤색해 진실과는 거리가 먼 가정에 끼워 맞추고 이를 특정한 의도를 갖고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은 음모론의 전형적 양식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좌파 국가 사회주의’여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을 끌어 들인 게 아니다. 예정된 파국을 지연시키고 시간을 벌어 문제 해결의 작은 가능성이라도 찾아보고자 하는 불행한 몸짓일 따름이다.

북한과 미국이 가만히 있는데 우리 정부가 무리해서 손목을 비틀고 있는 게 아니다. 이대로 가면 미국과 북한은 결국 한 판 붙고야 말 것이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을 통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세울 수 있는 대외정책의 성과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권이 한민족의 통일에 대한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다는 가정을 놓고 꾸짖지만 현실은 술에 취해 서로 주먹을 휘두를 태세인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득 볼 것 없는 행인의 신세일 뿐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북미대화가 이뤄진다면 그 실천적 결론은 무슨 통일이나 평화의 도래가 아니라 북한이 핵 공격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ICBM 발사 능력 일부를 포기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말하자면 평창동계올림픽이 어찌되든 우리의 손해는 이미 예정돼있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았던 전쟁에 가까운 일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정도의 얘기라는 거다. 보수세력의 프레임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은 ‘옹호’나 ‘실드 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건 엊그제까지 심지어 조선일보도 했던 이야기다.

물론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세상만사에 관심을 갖고 느긋하게 신문을 볼 여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은 기득권의 끝없는 이윤 추구 속에서 분절되었고 그 여파로 공동체는 무너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속는 것이 싫고 그래서 진실을 갈구하지만, 진실을 확인할 공간 자체가 이 사회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직면한 곤궁함과 맞서려면 공동체를 재건해야 하고 그 공동체를 좌우할 권한을 사람들의 손에 다시 쥐어줘야 한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통치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되어 사회적 암묵지(tacit knowledge)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실패한 과거의 국가사회주의가 아닌 21세기의 어떤 이상적 사회주의(그런 게 있다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홍준표 대표의 좌파 사회주의 타령은 그 때 가서나 진지하게 다뤄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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