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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니, 은조만 야수였을까[블로그와]하재근의 TV이야기
하재근/문화평론가 | 승인 2010.06.05 12:43

<미녀와 야수>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야수가 된 어느 왕자가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다. 겉모습이 야수가 된 이후 왕자는 타인과 관계하지 못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글자 그대로의 야수로 커간다.

그러다 벨이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왕자는 차츰 타인을 신뢰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성을 갖게 된다. 왕자는 아가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마저 배우게 되고, 그 아가씨에게 사랑의 키스를 받으며 결국 완전한 인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성장사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야수일 수 있다. 타인을 믿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바람직한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인간은 야수처럼 타인을 공격하고 상처 입힌다.

그런 야수를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건 결국 사랑이다. 어렸을 때 사랑을 충분히 못 받으면 인간은 제대로 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야수가 된 것이다.

미녀는 그런 야수를 사랑해줬다. 왕자가 야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미녀가 사랑의 키스를 한 건, 그 왕자의 결점을 포함한 모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줬다는 의미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사랑을 통해 어렸을 때의 사랑결핍이 치유된다. 그러자 야수는 왕자가 되었다.

   
 
- 은조가 다 컸다 -

<신데렐라 언니>가 끝났다. 중반부까지는 힘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이야기의 힘이 약해졌었다. 은조가 무작정 착하기만 한 순둥이 캐릭터가 되어 눈물만 뿌려댔기 때문이다. 기대를 모았던 작품인데 아쉽다.

작품의 아쉬움이야 어쨌든, 은조는 차곡차곡 성장했다. 은조의 마음속엔 사랑 받지 못해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겐 아빠도 없었고 믿을 수 있는 엄마도 없었다. 그 아이는 항상 버림 받을까봐 벌벌 떨었고, 타인을 믿지 못해 관계를 맺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을 가시로 둘러싼 채 그 안에 갇혀 살았다. 그 가시로 남을 찔러대는 그 아이는 야수였다.

그 야수에게 사랑을 주는 미녀가 나타난다. 새 아버지였다. 새 아버지는 은조 모녀의 거짓을 모두 알고, 은조의 상처를 모두 알면서 그녀들을 사랑해줬다. 야수의 모습을 한 왕자에게 키스해준 미녀처럼.

그러자 은조가 야수에서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은조 마음속에서 벌벌 떨고 있던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난 것이다. 새 아버지의 사랑 다음엔 홍기훈의 사랑이 있었다. 홍기훈의 사랑도 무조건적이었다. 홍기훈은 은조의 상처, 은조의 아픔, 즉 그녀의 어두운 면을 사랑해줬다. 홍기훈은 술창고에서 홀로 아파하는 은조를 이해해주기도 했다.

그런 사랑을 받으며 은조는 사람을 믿게 됐다. 드디어 관계를 맺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회에 이르러 은조는 상처 입은 홍기훈에게 자신을 믿고 기대라는 말을 할 정도로까지 성장했다. 자기 코가 석자인 사람은 남을 생각할 수 없다. 자기를 믿고 기대라는 말을 할 정도면, 그 자신의 상처가 상당히 치유된 상태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은조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됐다. 그전까지 은조는 타인에게 자기 마음을 열어 보이지 못했었다. 이때에 이르러 동생에게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게 됐고,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은조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던 마지막 담이 이 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제 은조는 마음을 표현하고, 관계 맺고,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 큰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신데렐라 언니>는 막을 내렸다.

   
 
-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수많은 은조들에게 -

은조만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끙끙대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엔 어렸을 때의 상처와 외로움을 안고 평생을 끙끙대는 어른-어린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나만 해도, 어렸을 때 아마도 성격이 불같으신 어머니 때문에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을 받아들이고, 관계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처럼 스스로를 분석하면서 인식해가는 경우는 양반이다. 원인도 모르면서 방황하는 더 불행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은조처럼 자폐적으로 되는 사람들, 반대로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바람둥이가 되거나, 술 같은 것에 의존하거나, 가시 같은 성정으로 주위를 모두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원인도 모른 채 그런 행동을 하며 스스로도 너무나 괴로워한다.

자기 마음속에 사랑 받지 못해서 벌벌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아이 때문에 우리는 야수가 됐던 것이다.

야수가 사람으로 크려면 은조가 그랬듯이 사랑이 필요하다. 은조는 새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럼 주위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땐 내가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 따뜻한 품을 갈구하는 내 마음 속 어린아이를 내가 품어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때, 나의 상처는 치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은조처럼 변화할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는 자폐 은조마저 변화시키는 사랑의 힘을 보여줬다. 이젠 그 힘을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쓸 때다. 오늘부터 우리 마음 속 어린아이를 우리 손으로 꼭 안아주자. 그러면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 나도 은조처럼 ‘다 큰 어른’이 될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하재근/문화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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