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인가요? 아니면 추세인가요? 하루가 다르게 연예 기사들을 장식하고 프로그램마다 이슈로 떠오르는 주제들이 다들 비스무리합니다. 누가 누구와 만나고 헤어졌다는, 술자리 뒷담화에나 어울릴 것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애정사가 그 이야기의 대부분이죠. 뜨겁게 사랑했었네, 후회 없는 만남이었네, 지금도 좋은 친구로 남았고, 그 이별의 이유가 무엇이었네 등등의 해명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 폭로들로 가득한 것을 보면 지금 연예가는 다들 헤어지는 중인가봅니다.

영화 방자전 홍보를 위해 해피투게더를 찾은 출연 배우들 역시도 이런 이별 고백에 동참했습니다. 춘향이로 분한 조여정이 이 영화 촬영 과정에서 사귀던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은 것이죠. 누구와 사귀고 있는지조차 몰랐기에 그래서 뭐 어쩌라구?라고 반문하고 싶은 생뚱맞은 고백이었지만 그녀의 이런 개인사 공개가 노리는 것은 너무나 민망할 정도로 명백합니다. 바로 그놈의 영화 홍보. 제일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봐달라는 구애의 고백이었죠.

남자친구와 헤어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방자전의 홍보 방향이 사실적인 베드신과 노출에 맞춰져 있었으니 실상 그 안에 은근히 숨겨져 있는 것은 남자친구가 꺼려할 정도의 수위 높은 장면들이 영화에 담겨져 있다는, 관객들의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방편이었겠죠. 그 속셈이 너무나 뻔해서 조금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평소엔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배우들이 기꺼이 출연을 결정하고 온몸을 던져 활약할 만큼 절박한 것이 영화 홍보이니 이런 식의 개인사 팔아먹기도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의 성실함, 혹은 책임감이라고 봐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따지고 보면 뭐 조여정 뿐이겠습니까? 정규7집으로 돌아온 박화요비는 그동안 공개 연애를 하던 언터쳐블의 슬리피와의 이별을 공개했고, 하하와 MC몽은 각각 무한도전과 1박2일에서 이별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면서 많은 질타를 받았죠. 각종 토크쇼에서는 이전에 누구와 사귀었네, 어떻게 이별을 했네 하는 후일담들이 자기 고백과 함께 매주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 것들이 복귀나 새로운 앨범, 작품 발표와 함께 이어지고 있으니 이젠 이별도 팔아먹는 세상이라고 해야겠어요.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가혹한 경쟁의 세상이고 리얼과 폭로의 코드가 넘실거리는 연예계에선 이별만큼 효과적이고 파급력이 큰 소재도 없을 테니까요. 단 며칠간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포털은 이들의 이별 이야기로 무수한 곁가지들을 만들고 일순간은 여론을 장악하게 만들어주니 이별 이야기야말로 확실한 관심을 불러 오는 먹이감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인 충격 요법으로 짧은 이득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들의 이별 고백은 자신들의 발밑을 파먹는 것밖에는 되지 않아요.

숨기고 싶은, 혼자만 간직해야 할 내밀한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털어놓고 공개함과 동시에 해당 연예인은 물론 이들 전체의 사생활에 대한 존중은 무참하게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죠. 필요에 따라 털어놓고 고백하고 폭로하는 경향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들의 사생활을 향한 대중들의 존중은 점점 사라져 버릴 겁니다.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공간을 스스로 대놓고 열어 놓고서 다른 이들에게 보호해달라고 호소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들이 누구와 헤어졌어요, 누구와 사귀고 있어요 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동시에 이런 건 비밀도 아니에요 라고 털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당연히 연예인도 사람이니 사랑도 할 수 있고 잘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이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자체를 뭐라 하면서 구도자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 좋은데 그걸 꼭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는 말이죠. 시시콜콜 다 털어놓고 공개하고 눈물지으며 위로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들끼리 잘 사귀고 잘 헤어지면 그만이란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기나 노래 실력, 웃길 수 있는 능력으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지 개인사를 공개하며 관심거리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이들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존중받고 싶다면 스스로가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 아니겠어요? 즐겁게 해피투게더를 보고 있다가 난데없는 조여정의 이별 고백이 껄끄러워 하는 말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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