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의 평가전, 역시나 이번에도 TV로 봤다.
뭐가 "이번에도"냐고 물어보실만 하다. 그렇다, 우리와 스페인의 맞대결은 결코 신기한 경험이 아니란 거다.

내 기억속에 흐릿한 스페인전인 1990년 월드컵, 6월 17일의 1대 3 패배, 황보관의 골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이후에도 내 기억에 남을만한 2번의 대결이 있었고, 오늘의 맞대결이 그 3번째 스페인전이었단 말이다.
아주 개인적인 스페인전에 대한 추억담, 개인적으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여러 디졸브를 포함한 개인사적 포스팅이다.

1994년 6월 17일(토)

정확하게 4년 만에, 정확하게 스페인과 다시 만났다. 황보관은 없고, 황선홍이 뛰었던 미국 월드컵 예선 첫경기.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홀리오라는, 왠지 테너 이름 같은 선수에게 선취골을 내주고, 그 선취골의 느린 그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추가골을 내줬던 경기.
하지만, 후반 40분에 터진 홍명보의 골과 45분, 교체로 들어간 서정원이 터뜨린 동점골, 내 기억 속에 1990년대 최고의 골로 기억에 남는 장면과 그 골 뒤풀이...

내 기억속의 스페인은 그 당시에도 강팀이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이 그런 강팀과도 비길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 대표팀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는 거.

이날의 소사, 토요일인 이날 특별활동을 수행한 중학생이던 나,
월드컵만큼이나 놀랍고, 기뻤던(?) 소식은 방북한 카터가 김일성과 정상회담을 약속했다는 뉴스였다. 월드컵에서의 선전에 이어 남북통일의 희망까지...
모든 것이 어린 중학생에게 엄청난 충격, 기쁜 충격으로 다가왔던 터라, 그날 일기의 클로징은 "대한민국 최고의 날일 것이다"였다는.
-뭐 결국은 월드컵에서도 2무 1패로 예선탈락, 남북정상회담도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말이다.-

2002년 6월 22일(토)

다시 또 돌아온 월드컵의 6월, 1998년을 넘어 한번 걸러 다시 만난 스페인.
우리나라 대표팀이 스페인과, 그것도 8강에서 만날 것이라 예상한 축구인이 당시에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당연히. 당시 군대에서 제대할 날짜를 불과 열흘 앞둔 나로서도 이런 놀라운 충격은 예상치 못했다.
사실 이 날 스페인이 우세하게 경기를 진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스페인이 단지 골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라 기억된다. -물론, 기억에 자신은 없다.-
승부차기까지 이른 이날의 승부, 우리 대표팀 마지막 키커였던 홍명보 선수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날의 히어로는 이분,

지금도 여전히 대표팀으로 활약중인 이운재 선수. 이날의 이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난 2002년 6월 25일, 독일전을 시청앞 거리응원으로 즐길 수 있었단 말이다. -전역전 말년휴가를 나와서다.-
결과적으론 나와서 본 독일전, 가장 아쉬웠던 경기고 그리 재미있진 않았고, 오히려 그 순간까지 날 인도했던 스페인전은 너무 즐거웠던 추억이었다는 거.

2010년 6월 4일(금)

앞서 가졌던 기억들은 모두가 낮 시간에 본 축구였다면... 이건 너무 야심한 시간의 스페인전이다.
2010 남아공을 앞두고 펼친 평가전의 마지막이자, 가장 기대를 갖게 한 강팀과의 맞대결. 나름 앞서 펼쳐진 2번에 비해 더 좋은 환경으로 보리라 기대했다.

풀HD TV와 쾌적하고 편한 관람환경, 하지만 현실은 또 만만치 않았다.
갑작스러운 부음으로 문상을 가야했고, 야심한 시간을 이용해 간 문상덕에 졸지에 DMB로 축구를 봐야 했다는 거.
-생각이 짧았다. 장례식장엔 TV가 없지 않은가..-

결국은 내가 본 스페인전 첫번째 패배, 조금은 양팀의 모습에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뭔가 앞서 펼쳐진 2번에 비해 감동이나 감흥이 적은 건 이제 나이를 먹은 탓인지, 아니면 월드컵처럼 큰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어찌됐던, 이젠 월드컵. 공교롭게도 스페인전을 2번이나 펼쳤던 6월 17일, 2010년의 6월 17일은 우리대표팀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다.
-뭐 이번 스페인과의 평가전이 아르헨티나전을 대비한 것이라는데, 왠지 기대되는군. 흐흠-
애써 무심하려 해도, 다가오는 월드컵에 뛰는 가슴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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