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인 블로거 '디제'님은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임을 밝혀둡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입니다. 야구에서 포지션은 9개나 되지만, 선수단의 절반은 투수입니다. 투수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마운드 위에서 플레이하며, 투수가 공을 던져야만 플레이가 시작됩니다. 양 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그리고 관중들까지 모두 투수를 바라봅니다. 철저히 3의 배수로 귀결되는 야구에서 지명타자라는 포지션을 만들어 9명이 아닌 10명이 출전하며 투수를 보호합니다. 투수가 잘 하면, 한 명의 투수가 홀로 한 경기를 책임질 수도 있지만, 못 하면 수많은 다른 투수들이 등판해야 하고, 야수들은 길어지는 경기 시간에 집중력을 상실하고 체력을 소진하게 됩니다. 다음날 어떤 야수가 출장하는지 사전에 예고하는 일은 없지만, 선발 투수만큼은 전날에 등판 예고를 합니다. 야수 한 명의 기량이나 컨디션에 따라 경기를 예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선발 투수가 예고된 것만으로 경기의 향방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선발 투수의 비중은 지대합니다.

LG는 어제까지 원정 4연승을 거두며 롯데와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기에 충분한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타자들의 컨디션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41일 만에 1군에 선발 등판한 심수창은 타자들이 미쳐 손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돌이킬 수 없도록 자초했습니다. 선발 투수가 1회에 실점을 할 수도 있지만, 대량 실점할 경우 나머지 8이닝이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심수창의 오늘 투구가 그러했습니다. 1회말 2번 타자 손아섭의 솔로 홈런부터, 여섯 타자 연속으로 안타를 허용하며 4실점하더니, 2회말에도 선두 타자 김주찬에게 2루타를 시작으로 추가 실점을 내줌으로써 초반부터 경기의 긴장감을 상실하도록 했습니다. 상대 타자들이 가장 공략이 쉬운 허리 높이에서 밋밋하게 형성되는 심수창의 투구는, 마치 경기 전 제공되는 배팅 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스윕과 연승의 가능성에 일찌감치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봉중근과 김광삼 이외에는, 미지수인 더마트레와 갈수록 구위가 저하되는 박명환까지 LG의 선발진은 아직도 미완성인데, 심수창의 부진은 선발진 완성이 요원함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이제는 기대를 떠나 과연 얼마나 더 심수창에게 실망을 해야 하는지 두려울 정도입니다.

▲ LG 심수창이 고민스러운 몸짓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그렇다고 타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없습니다. LG는 오늘 단 한 개의 진루타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회초와 3회초 모두 선두 타자가 안타로 출루했지만, 1루에 묶인 채 공격이 종료되었고, 8회초 선두 타자 오지환이 2루타로 출루했지만, 2사가 될 때까지 2루에서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2사 후 이대형의 중전 적시타로 LG는 처음으로 3루와 홈을 밟으며 영패를 면했습니다. 특히 3회초 김태완의 안타 이후, 7회초 이닝 종료까지 5이닝 동안 15명의 타자가 롯데 선발 사도스키를 상대로 단 한 명도 출루하지 못하며 퍼펙트로 봉쇄당했다는 것은 어이없습니다. 타선이 2회초와 3회초 선두 타자 출루를 활용해 득점하며 추격했다면, 한희도 5회말 갑자기 무너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했습니다.

사도스키는 7회초를 종료시킨 후 기분 좋게 마운드를 내려갔는데, 다음 LG전에도 상당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등판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제 9회말 롯데는 9:5로 뒤지며 승패가 이미 갈렸지만, 2사 후 몸에 맞는 공과 연속 안타를 묶어 마무리 오카모토를 상대로 1점을 뽑았고, 이것이 오늘 경기에서 1회말 타선 폭발과 대량 득점으로 연결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따라서 사도스키에게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온전히 마운드를 내려가도록 타선이 무기력했던 것은 다음 사도스키의 등판에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8회 말 오지환의 연속 실책 또한 아쉬웠습니다. 8회 초 종료 후 8:1로 승패는 갈렸지만, 오지환의 실책으로 정재복의 투구수는 무려 76개까지 불어났고, 다른 야수들의 수비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어차피 패배가 확실시되니,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깔끔히 수비를 마무리하고 상경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오지환의 실책 2개가 이를 방해한 것입니다. 모처럼 1군에 올라왔지만 벌투라도 하듯 선발 심수창보다 많은 투구를 해야 했던 정재복이 안쓰러웠습니다.

어쨌든 중위권 각축을 벌이는 롯데를 상대로 LG는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며 5위를 탈환한 채 3연전을 마쳤습니다. 주말 3연전의 상대는 SK인데, SK는 한화와의 주중 3연전을 루징 시리즈로 마감했으며, 3경기 도합 5득점에 그치며 타선이 침체된 모습이고, 오늘 경기에서는 필승 계투조까지 투입했지만 패했습니다. 현재 SK의 분위기는 긴 연승을 이어가던 지난 4월 말 문학 3연전에 비해 가라앉은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봉중근과 김광삼을 투입할 LG가 위닝 시리즈를 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문제는 내일 첫 경기인데, 역시 김광현과 맞대결하는 선발 박명환의 어깨에 달렸습니다. 설령 패하더라도 박명환이 SK 타선에 난타당하며 타격감을 살려줘서는 안 되며, 조기에 강판되어 계투진에 부담을 줘서도 곤란합니다. 최대한 엇비슷한 박빙을 유지하며 SK를 압박하고 상대 계투진을 끌어내야 남은 2경기 승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일 경기의 승패보다 내용이 3연전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부진했던 투수조 조장 박명환의 분발이 요구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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