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콧수염, 나치 문양, 스킨헤드족…. 파시즘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들이다.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억압과 파괴를 환유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파시즘이 정작 민주주의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등장하는 맥락까지 잡아내지는 못한다. 히틀러는 박정희, 전두환과 과(科)가 다르다. 제3제국은 총구 끝이 아닌 국민의 투표용지 위에 세워졌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나는 지금 파시즘이라는 이름의 망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대선 결과보다는 대선 이후가 벌써 두렵고, 대선 과정은 이미 불길했다.

20세기 초반 독일의 ‘풍경’과 지금 한국의 모습

나치 집권 전 독일과 지금 한국사회를 견줘보면 느낌은 한층 강화된다.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으로 유럽의 2류 국가 독일은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로 환골탈태했다. 그러나 국가경영능력이 취약했고,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했으며, 인위적인 정계구조 개편을 시도하는 자충수를 거듭했다. 외세에 줏대 없이 휘둘렸고, 미국 발 대공황의 충격으로 경제 상태는 심각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나치가 집권했다.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21세기 초반 한국으로 건너와 마주치는 풍경은 시공의 거리를 무색하게 한다. 한국도 무언가 무너지고 있는가? 무너지고 있는 건 무엇인가?

▲ 경향신문 12월14일자 4면.

물론, 신비주의적 시각으로 역사를 내다볼 일은 아니다. 몇 가지 공통점은 우연한 것일 수도 있다. 서구의 파시즘이 과잉 민족주의라면 거꾸로 한국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아직 민족분열주의와 사대주의다. 하지만 서구의 역사적 경험으로만 파시즘을 정의하는 건 변종 옥시덴탈리즘의 혐의가 짙다. 매개가 민족이냐 아니냐 하는 협애한 접근으로는 ‘일상의 파시즘' 같은 메타 개념을 수용할 수도 없다. 파시즘의 잣대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약자에게 인색하고 억압적일 때 파시즘은 안개처럼 순식간에 그 사회를 집어삼킨다. 히틀러의 ‘강한 게르만 민족'의 주술과 이명박 후보의 ‘국민 성공'의 주술은 이 점에서 닮은꼴이다.

파시즘의 주술은 인간을 (타자에게) 잔혹하고 (욕망 앞에) 뻔뻔하게 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731부대의 의사가 천연스레 생체실험을 마친 뒤 옷단추를 꿰매다 손가락을 찔리고는 죽을 표정을 짓는 대목이었다. 이탈리아 국적 유태인 작가 프레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연구실의 젊은 민간인 여성들 앞에서 겪었던 수치심을 잊지 못하고, 훗날 홀로코스트의 주요 기록으로 남겼다. 깃털 뜯긴 닭처럼 피떡진 누더기 차림으로 굶주린 채 서 있는 레비 앞에서, 솜털 보송보송한 그녀들은 빵에 잼을 발라먹으며 크리스마스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잡담을 하다 말고 인상을 찌푸린다. “냄새나는 유대인.”

명심하자. 파시즘의 힘은 아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파시즘의 힘은 아래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족/인종/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내놓고 숭배하는 집단은 지배계층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화이트칼라와 교사들이,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헝가리에서는 노동계급과 소작농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파시즘을 지지했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후보와 정책연대 협약을 맺은 것은 적어도 파시즘의 역사에서는 유별난 일이 아니다. 욕쟁이 할머니가 선거광고에 출연해 이 후보를 걸쭉하게 띄운 것도, 청년 백수가 선거연설에서 눈물을 찍어가며 이 후보에게 감동의 ‘신앙 간증'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인 현상이다.

▲ 한겨레 12월11일자 1면.

그러나 파시즘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뚜렷하게 검증된 보편 원칙은 지지자의 선택이 지지자의 욕망은 물론 존재 자체까지 배반한다는 사실이다. 강한 게르만 민족이 되고자 했던 독일 민중들의 선택은 그들 자신에 대한 억압으로 고스란히 환원됐다.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이렇게 묻는다. “왜 대중은 자신을 위한 것인 양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가?” BBK 의혹이 사실이더라도 ‘그 분'을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유권자들의 묻지마식 투표 의향도 파시즘이라는 사디즘적이면서도 마조히즘적인 이데올로기를 분석해야 제대로 답이 나올 성싶다. (그래서 지금 BBK와 관련한 이명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말바꾸기’가 아니라 ‘사업 실패’다. 그의 도덕성을 겨냥하고 있는 BBK 동영상은 판세를 바꿀 지렛대가 아니다.)

욕망은 폐쇄된 생체 안에서만 생성되는 게 아니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개별적으로 내면화되고, 집단적으로 표출된다. 독일 국민의 집단 광기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처했던 현실로부터 받은 고통·억압과 닿아 있다. 하지만 그 뿌리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기에,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파시즘의 비상구를 열고 말았다. 한국사회 민중들도 지금 탈주의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 그래서 김근태 의원의 ‘국민 노망론’은 한가하게 들린다. 그가 속한 정치집단은 이 사태의 원인(또는 배경)이다. 그의 개탄은 가정폭력 남성이 집단가출한 처자식을 두고 “미쳤어! 이 겨울에 얼어 죽으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선거는 탈주(脫走)의 불을 누가 밝히느냐의 싸움이었다. 허섭스레기 같은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 안에서 “잃어버린 10년을 환불하라”며 불을 놓고 ‘국민 성공’의 유도등을 밝힌 축이 판세를 잡은 것이다. “질서”를 외치고 “기물파손에 따른 경범죄 처벌”을 고지해봐야 사태를 걷잡을 수는 없었다. 뒤늦게 밝혀든 정동영 후보의 ‘가족 행복’ 유도등은 처음부터 맞불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 성공’ 유도등을 가리키는 화살표였을 뿐이다. 한국사회 성공 담론의 전진기지가 바로 위장전입·고액과외·아파트값 담합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하위 상징을 붙들고 이 후보의 선거를 함께 치른 셈이다.

네티즌 ‘자생언론’의 실종 … 선거법 탓만일까

한국사회는 그동안에도 알게 모르게 파시즘의 징후가 짙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네티즌의 ‘자생언론’ 기능이 이번 선거에서 실종된 것을 엄격한 선거법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내 눈에는 이른바 ‘노빠’와 ‘황빠’의 모집단이 선명하게 나뉘지 않고, 이들의 정체성도 겹쳐 보인다. “할리우드 못지않은 컴퓨터그래픽 실력” 하나만을 들어, 비평가들에게 융단폭격을 가하며 ‘애국적 티케팅’ 운동을 벌인 ‘워빠’도 다른 무리는 아닌 듯싶다. 얼마 전 들으니 보수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안>의 방문자 수가 <오마이뉴스>의 그것을 앞질렀다고 한다. 모두 아귀가 맞는 현상들이다.

그러나 네티즌과, 그들의 자생언론 기능을 어느 쪽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보다 먼저, 그들이 현실정치를 자해적으로 징치하게 하는 ‘현실’ 자체를 확대해서 봐야 한다. 양극화-FTA-비정규직·청년실업 폭증 같은 신자유주의의 고통과 억압, 침략전쟁 파병-공기업 낙하산 따위 집권세력의 자기부정적인 뻔뻔함…. 현실은 이미 파시즘 생장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집권세력은 스스로 파시즘의 역할모델이었는지 모른다. 노회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퍼뜨린 안개에 빨려들지 않는 게 당장 급하다. 이럴수록 이성적 사유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정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1993년 <한겨레>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줄곧 사회부 쪽에서 일했다. 지금은, 사상 초유의 정파(停波) 사태를 겪고 눈물겨운 투쟁 끝에 새 방송을 시작하는 OBS경인TV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문제연구소장’을 자처하고 산다. ‘쿨하다’를 날씨 상태에 대한 표현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송진처럼 끈적한 386의 시대적 아비튀스에 갇혀 있지만, 일상의 억압에 관한 미시담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