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고 조직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선택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될 수도 있고, 그저 운명에 따라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중요한 상황에 따라 한 개인 또는 조직의 운명이 좋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고 반대로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또 한편으로는 과거에 너무 얽매이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 축구 역시 순간의 중요한 상황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던 적이 아주 많았습니다. 약팀과의 경기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경질된 외국인 감독들도 여럿 있었고, 반대로 위기를 딛고 좋은 결과를 냈던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운명을 어쩌면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꿨을 수도 있었을 그 순간들이 과연 무엇이 있었는지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 86년 멕시코월드컵 대표팀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차범근이 1골을 넣었다면...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 무대에 오른 한국 축구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선수는 바로 '스타' 차범근이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던 그의 플레이에 희망을 가졌던 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선 3경기에 출전해 차범근이 기록한 성적은 0골. 상대의 집중견제와 밀착마크에 좀처럼 이렇다 할 득점 찬스를 얻지 못하면서 차범근은 이 대회에서 골을 넣는데 실패했습니다. 만약 차범근이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라는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해 골을 넣었다면 과연 얼마나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요? 클럽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좋은 성과를 낸 선수로 아마 개인적인 가치가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1주일이라도 더 빨리 갔다면...

그래도 1986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1무 2패, 4득점-7실점의 선전하는 성적을 내면서 희망을 보였습니다. 이어 4년 뒤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은 무패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엄청난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준비 기간에서 삐걱댔던 것이 뼈아팠습니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맞춤 훈련 같은 것이 없었던 당시, 대표팀은 몇몇 스태프들이 '개막 1주일 전에 들어가면 별 문제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차, 현지 적응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태프의 조언대로 대표팀은 개막 1주일전 이탈리아에 입성, 적응훈련을 펼쳤지만 이미 시차, 환경적인 적응 면에서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3패 탈락의 망신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최소한 1주일 더 빨리 이탈리아에 입성했다면 과연 어떤 성과를 냈을 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독일전에서 역전승을 거뒀다면...

4년 뒤 미국월드컵에서 한국은 상당히 진보한 경기력을 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2골을 먼저 내주고도 막판 5분동안 2골을 넣으며 2-2 무승부를 기록한 뒤,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선전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은 독일의 스타 플레이어들에 주눅든 모습을 보이면서 전반에만 3골을 내주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황선홍, 홍명보가 2골을 따라가며 추격 의지를 당겼습니다. 홍명보가 골을 넣은 시각은 후반 종료까지 무려 30분 가량 남아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충분히 2-3골은 더 따라갈 수 있는 시간이었고, 분위기 또한 완전히 한국 페이스였습니다. 그러나 골결정력 부족으로 한국은 동점골, 역전골을 넣는데 실패했고 결국 16강 진출도 실패했습니다. 만약 이 경기에서 남은 시간동안 2골을 더 넣었다면 16강 진출은 물론 월드컵사(史)에도 길이 남을 '대역전극'을 펼쳤을 수 있었을텐데 그저 진일보한 경기력을 보였다는 것에 만족하고 대회를 마쳐야만 했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서 하석주가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또 4년 뒤, 한국 축구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 차범근을 앞세워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신명나는 레이스를 질주하며 4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4년 전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기에 프랑스월드컵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만만한 상대로 봤던 첫 경기 상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물론 전반 27분까지는 좋았습니다. 골에어리어 중앙에서 얻은 프리킥을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절묘하게 감아차 상대 수비수 맞고 골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사상 첫 선제골을 넣은 쾌거를 이뤄낸 것입니다. 그러나 1분 뒤 하석주는 '하지 말아야 할' 깊은 백태클로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으면서 분위기는 일순간 잿빛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은 후반에만 3골을 내주는 시련을 겪었고, 멕시코전 역전패, 네덜란드전 완패 등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만약 하석주가 정상적인 경기를 펼쳐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월드컵 1승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아닌 19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서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최용수 ⓒ연합뉴스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최용수가 골을 넣었다면...

우리에게 좋은 기억만 있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지만 아쉬운 장면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조별 예선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모두 무위에 그치고 무승부를 거뒀던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후반 42분, 이을용의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맞이했던 최용수의 슈팅이 안타깝게 허공을 갈랐던 장면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왼쪽을 돌파해 들어가던 이을용의 패스를 받아 곧바로 회심의 슈팅을 날린 최용수는 안타깝게 역전골을 기록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이후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 골이 터졌다면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도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이탈리아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경기가 됐을 수 있었을텐데 최용수 현 코치의 입장에서는 아마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차두리의 오버헤드킥이 들어갔다면...

우리 축구팬들에게 상당히 기억에 남는 경기로 기억되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바로 1-1 상황에서 후반 45분, 차두리가 날린 회심의 오버헤드킥이 부폰 골키퍼의 선방에 막힌 것입니다. 물론 부폰의 선방에 의한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오버헤드킥의 달인' 김도훈 이후 가장 시원한 오버헤드킥을 날렸던 터라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안정환의 골든골이 물론 극적이었지만 차두리의 이 골이 들어갔다면 아마 한국 축구의 최고의 멋진 골로 기록되는 것은 물론 차두리 개인의 가치 상승은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한일월드컵 독일전 후반 26분 장면
2002년 한일월드컵 독일전 후반 26분 순간이 성공을 거뒀다면...

지금은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당시에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4강 독일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맞서던 후반 26분, 역습을 통해 중앙으로 돌파해 들어가던 이천수가 반대편에 손을 들고 있던 안정환을 보지 못하고 혼자 볼을 끌다가 반칙을 얻어낸 장면이 있었습니다. 위 사진 캡쳐 상에서도 보이겠지만 이천수가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반대편에 손을 들고 있는 안정환에게 그대로 연결해줬더라면 그야말로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을 수 있었을텐데요. 결국 3분 뒤, 미하엘 발락에게 결승골을 내주면서 아쉽게 패했습니다. 물론 4강까지 간 것 자체에 큰 박수를 보낼 수 있겠지만 두고두고 아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모리엔테스의 킥이 들어갔다면...

그랬던 반면 바로 위 상황을 맞이하지도 못했을뻔 한 상황이 있었으니 바로 8강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연장 전반 있었던 모리엔테스의 골대 맞추기 장면을 들 수 있겠습니다. 측면 공격수로 이날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호아킨의 스로인 패스를 받아 곧바로 한국 수비수를 앞에 두고 슈팅을 날린 모리엔테스의 공은 골키퍼 이운재도 꼼짝 못할 만큼 절묘하기 짝이 없었는데요.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이 공은 골대를 맞고 나왔고, 이후 순간을 잘 넘기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골이 들어갔다면 스페인은 모처럼 4강에 올랐을 수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한국 축구의 거침없는 질주는 8강에서 멈췄을 수도 있는 '아찔한 그 순간'이었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이 다치지 않았다면...

4강 신화를 뒤로 한 채 4년 뒤 독일월드컵을 맞이한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에 버금가는 성적을 내기 위한 부담감이 있었고, 그 때문이었는지 좀처럼 좋아지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움베르트 쿠엘류,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월드컵을 8개월여 앞두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데려오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체제 후 한국 축구는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그 가운데서도 2002년 월드컵에서 안타깝게 엔트리에 탈락한 이동국의 부활에 많은 사람들은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독일월드컵 개막 100일 전에 열린 앙골라와의 평가전에서도 이동국은 선발 출장하며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K-리그 경기 도중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으면서 결국 월드컵에서 뛸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만약 이 당시 이동국이 다치지 않고 독일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면 이동국 개인은 물론 한국 축구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 궁금해집니다.

박주영ⓒ연합뉴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박주영이 이전 2경기에 나섰다면...

'축구 천재' 박주영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5년 혜성같이 등장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구세주로 떠올랐던 박주영에 많은 사람들은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이전 선수들에게는 볼 수 없는 창조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 그리고 볼만 잡았다 하면 날카롭게 이어지는 슈팅들이 이제 막 20살을 넘긴 선수라고 보기 힘들 만큼 돋보이는 면이 많았습니다. 그 덕에 독일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일찍이 좋은 클럽팀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실제로 아드보카트 감독의 박주영에 대한 신뢰 역시 높은 모습을 나타내면서 기대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조별예선에서 스위스전 단 한 경기에 출전하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이 경기에서 경험 부족, 세계적인 경쟁력과는 다소 거리가 먼 플레이를 보이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키 큰 원톱 공격수를 선호한 아드보카트의 전략에 밀려 '선배' 조재진이 잇따라 투입되면서 박주영의 출전은 토고, 프랑스전에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월드컵이 당시의 한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는 하지만 만약 이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이 박주영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또 박주영이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어떤 결과를 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월드컵 경기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 쭉 살펴봤지만 그보다 저는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나라 축구 환경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면서 이번에 전하는 이야기에 꼭 한 번 언급해보고 싶었습니다. 일본보다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어 거의 유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야말로 엄청난 외교력을 동원해 사상 첫 공동개최를 일궈내 2002년 월드컵을 치렀는데요. 이 월드컵을 통해 현대사에도 길이 남을 명장면을 만들어내면서 축구계는 물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진보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축구가 국민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세계적인 수준에 버금가는 축구 인프라가 갖춰지고, 질적인 성장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만들어진 것도 한일월드컵이 한국 축구에 선사한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축구 발전은 물론 사회적인 측면에서 진보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한일월드컵이 만약 없었다면 우리 축구 문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갔을지 참 흥미롭게만 느껴집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 역시 많은 사람들은 기대를 갖고 있고, 선수들 역시 원정 첫 16강을 목표로 막판 담금질을 벌이고 있습니다. 순간의 상황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인식을 갖고 보다 신중한 플레이를 펼치면서도 드라마틱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2010년 태극전사'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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