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지방선거 개표가 시작됐다. 2일 오후 잠실학생체육관에 마련된 강동구 개표소에서 분류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제동은 옳았다. 선거에 관한 코멘트는 아니었지만 “사람은 틀릴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의 힘을 여실히 입증했다.

정치권이나 언론은 이번 결과가 선거일 이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를 해석하는 데 분주하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은 부동층 혹은 바닥 민심의 정체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혹자는 유권자들이 앞서가는 후보에 표를 던져 승자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밴드왜건(bandwagon) 대신 약자를 동정하는 언더독(underdog)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이론이 현상화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주류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어 한 의견은 실제보다 과도하게, 다른 의견은 과소평가된다는 것이다.

여론이 침묵의 나선 모양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현정부와 언론이 우리 사회에 끼친 폐해가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침묵의 나선 이론은 크게 두 가지 전제에 기초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의견이 소수라 느낄 때 그 의견을 표명해 고립되기보다 차라리 침묵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주류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대중매체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매체는 어디서나 이용 가능한 편재성(ubiquity),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제공하는 누적성(cumulation), 유형을 막론하고 공통된 견해를 표방하는 일치성(consonance)을 갖는 것으로 다시 전제된다.

이번 선거결과가 일반적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면 우리 사회에 ‘침묵하는 다수’가 상당수라는 의미다. 통상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유형의 의견보다 더 큰 보호를 받는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시장에 나와 서로 맞부딪혀야 최선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사회적 고립이든 사법적 처벌이든 사람들은 뭔가가 걸려 자기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했다는 뜻이니까. 이는 미네르바 구속에서부터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달려든 일까지, 끊이지 않은 헛발질을 지켜보며 학습된 비극적 결과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견줄만한 이 얼음장 같은 여론 분위기를 만든 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 조선일보 2일자 1면. 조중동은 마치 담합한 듯 선거 당일에도 ‘북 위폐․마약․담배’ ‘한미 전작권 연기’ '미 핵 항공모함' 등 북풍을 조장하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올리는 몰상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 조선일보 캡처
침묵의 나선 이론은 대중매체가 그 종류를 불문하고 유사한 주류 의견을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유포함으로써 여론형성 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실제 신문과 방송매체 등 주류 언론은 그랬다. 구시대의 유물이 된 줄 알았던 ‘북풍’의 바람잡이 구실을 수행했다. 특히 조중동은 마치 담합한 듯 선거 당일에도 ‘북 위폐․마약․담배’ ‘한미 전작권 연기’ '미 핵 항공모함' 등 북풍을 조장하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올리는 몰상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글로벌 시대를 외치면서 뉴스가치에 대한 분별력은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나라 언론 환경의 현주소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침묵의 나선 이론이 통하지 않은 지점은 딱 하나다. 유권자들을 두렵게 해 입을 막고 언론이 주류 의견을 대량 살포했으나 그것이 작동하지 않은 것. 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사실은 두 가지다. 첫째, 권력은 여론을 장악하지 못한다. 권력이 외형상, 그리고 일시적으로 여론공간을 위축시킬 순 있어도 언젠가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권력을 향한다. 둘째, 주류 언론은 생명줄과도 같은 신뢰를 잃었다. 특히 머지않아 이 사회의 기둥이 될 젊은이들에게. 북풍으로 도배질하고도 그것이 먹혀들지 않은 이번 선거는 언론의 신뢰도 추락이 회복 불능 수준임을 암시한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침묵한 다수고 패자는 정부와 언론이다. 희망의 싹은 이렇게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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