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물 찼을 때 노를 젓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기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연예인들에겐 그런 타이밍 잡기야말로 늘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의 빅 히트작이 끝나고 난 뒤에 어떻게 복귀 시점을 잡는가, 어떤 작품의 어떤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다시 나타나는가를 두고 정답이란 있을 수 없죠. 각기 사정에 따라, 성향에 따라, 무엇보다도 만나는 작품 운에 따라 다른 고민, 다른 결정, 다른 결과가 나오는 법이거든요. 하지만 그런 결정의 미묘함, 어려움과는 달리 결과는 몹시나 명쾌하고 잔혹하게 드러납니다. 때론 그 잘못된 선택이 이번 경우처럼 그 시작에서부터 드러나기도 하죠.

실제 커플 등장이라는 우결의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인지도를 다시 회복하고 연이어 출연한 지붕 뚫고 하이킥의 히로인으로 일거에 인생 역전을 이룬 황정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SBS의 대작 드라마 자이언트의 출연 결정은 여러모로 무모한, 위험도가 너무 높은 도박처럼 보이거든요. 황정음과 그녀의 소속사의 결정이 나름 타당한 이유도 있고, 적절한 단계 밟기라고 생각되는 일면도 있지만 그 속도와 역할이 너무 급하게 밀어붙인다는 껄끄러움이 느껴지거든요.

당연히 욕심이 날만한 작품이고 배역입니다.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이런 배경의 드라마가 제작되는지에 대한 짜증스러움은 지울 수 없지만 드라마 그 자체의 재미는 일정수준 담보할 수 있는 욕망과 욕심이 잔뜩 엉클어진 흥미진진한 시대극인데다가 등장하는 이들의 면모 역시도 준수하니까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시간이 갈수록 힘이 붙을 수밖에 없는 긴 호흡의 대작 성공 스토리에서 작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서서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로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 호흡이 너무나 짧습니다. 모두가 심각하게 성공을 이야기하고, 그 시대의 아픔과 잔인한 욕망을 겨루는 작품에서 황정음의 존재는 납득할만한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저 우스운 장식품으로만 남을 공산이 너무나도 커요. 그 휴식의 시간이 너무나 짧았기에 그녀의 정극 연기와 시트콤에서의 모습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역들의 열연이 끝나고 성인 연기자들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변화의 시점에는 늘 불만과 불평이 있기 마련이지만 유독 그녀를 향한 어색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녀의 연기력 이전에 바로 이런 어색한 기시감 때문이에요.

게다가 아무리 조연급이라고는 하지만 남자 냄새가 폴폴 나는 대작 시대극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부여되는 성격은 너무나 단순하고 뻔한 것이기 일쑤입니다. 그녀의 배역 역시도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면서 오빠를 바라보는 캔디의 이미지이고, 이것은 이미 하이킥에서도 일면 보여주었던 것이죠. 이전의 배역과 연관시키며 정극으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전작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하나의 이미지에 고립되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이왕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보다 차분하게,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모르겠습니다. 김광수 사단이라는, 그녀의 소속사가 늘 이런 식으로 잘나갈 때 밀어붙이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미 CF로 급격한 이미지 소모를 경험하고 있고, 자이언트에서의 역할과는 그런 발랄하고 조금은 푼수끼가 넘치는 모습이 정반대의 것으로 TV를 여전히 점령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 과연 그녀의 연기가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조금 더 하이킥에서의 성공을 누리면서 길게 내다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하긴 같은 작품의 정보석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연기 경력과 능력은 황정음의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이런 위험한 도박을 감행한 그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배우로서의 경력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의 여부가 자이언트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겠네요. 첫 등장을 봐서는 그리 승률이 높을 것 같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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