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직접 나서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했다. 1차 수사를 경찰이 전담하고 국정원의 대공 수사 기능을 경찰 내 안보수사처로 이관하며,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하고 자치경찰제를 도입해 경찰의 비대화를 막겠다는 게 핵심이다. 수사기관끼리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15일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대개 경찰이 수혜자고 검찰이 피해자인 구도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의 추가 경찰 쪽으로 쏠린 데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문제를 더하면 검찰이 휘두를 수 있는 칼의 크기가 축소됐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그간 ‘갑을관계’나 다름이 없었던 검찰의 지휘를 수사 시작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데다가 검사의 비리를 수사해 반격(?)을 가할 수도 있게 됐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평가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다만 대공수사 전담이라는 ‘혹’을 달았고 조직이 쪼개졌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승리는 아니라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14일 조국 민정수석이 언급했듯 경찰도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떳떳치 못한 입장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영화 <1987>이 다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경찰은 검찰과 함께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부당한 방식으로 권력을 휘둘러 온 게 사실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검찰과 경찰이 사실상 공범이다.

이번 개혁안에서도 이 점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정보경찰의 문제다. 경찰이 부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한 사건에는 반드시 대공분야를 전담하는 경찰조직의 월권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번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안은 경찰위원회의 실질적 운영을 통한 경찰 권력 통제 부분이 포함돼있긴 하지만 정보경찰의 월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다소 미진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수사기관의 개혁이라는 맥락에서 경찰의 힘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그간의 논의 과정에서도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권력기관끼리의 상호견제를 가능하게 하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결과이다. 경찰도 스스로 조직문화 일신과 업무능력 향상을 통해 남는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찰청장이 나서 여론을 바꾸기 위한 행보를 보이는 것 정도로는 미진하다. 일선에서 권한남용 등의 문제가 없어야 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는 15일부터 사법개혁특위를 통해 권력기관 개혁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다. 그런데 당장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 합의가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가 직접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며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무력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당도 논의에 긍정적인 태도는 아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이날 이미 국회가 당리당략을 버리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는데 청와대가 뒷북을 치고 있다는 요지의 비판을 내놨다. 사법개혁특위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각각 7명, 국민의당 2명, 정의당 1명으로 구성돼있다. 결국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인데 사법개혁특위에 들어가 있는 송기석 권은희 의원 모두 안철수 대표 측에 가까운 인사들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청와대의 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되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청와대 안은 국회에서 축소될 수밖에 없는데 이렇다 보니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나선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조국 민정수석의 발표 내용 자체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국정기획자문위가 마련한 국정과제 내용에서 일부 구체화된 수준일 뿐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더군다나 조국 민정수석은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로 분류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거부감이 큰 인물이다. 일부 보수언론이 박근혜 정권으로 치면 우병우 민정수석이 나와서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따져볼 것은 조국 민정수석이 나서는 것과 관계없이 이미 자유한국당은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권력기관 개혁안을 직접 발표하지 않았더라도 자유한국당의 반대 입장이 분명한 상황에선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와 같은 구도였다면 청와대 안에 찬성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컸던 국민의당의 경우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 때문에 전향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이 주장은 이렇게 바로잡아야 한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국회 논의가 무력화된 게 아니라 국회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조국 민정수석을 언론 앞에 세운 것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보다 높고, 권력기관 개혁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보다도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현실을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돌파해보려고 시도한 것으로 상황을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대의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계산적일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가지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놓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는 것도 가능하다. 즉, 어차피 누더기가 될 개혁안이라면 청와대의 원칙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국민이 국회의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이 지방선거를 곧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정치적 효과가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개헌을 놓고도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피력했다. 대통령의 4년 중임제를 선호하지만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발언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자신의 기존 입장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국회가 합의해오면 수용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된다. 그런데 국회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의 공약인 개헌을 이루지 못한 책임은 국회에 있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 구도가 올해 상반기 내내 유지될 것이다. 지방선거는 이런 방식으로 개혁 대 반 개혁이라는 전선이 명확해진 상태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의 원칙적 행보가 오로지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만을 감안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됐건 여소야대라는 약점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모색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면 국회 내 구도는 2020년에나 바꿀 수 있다. 그때까지 이 정부가 약속했던 상당수의 개혁 과제가 표류하거나 유실될 것이다. 이에 대해 어찌됐건 권력은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나 이런 방식으로 현안을 다룰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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