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숏’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낮은 카메라, 인물 간 대화 장면에서 180도 가상선 따위는 가뿐히 무시해버리는 촬영과 편집. 도대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어떻게 봐야할까. 많은 훌륭한 평자들이 이미 수도 없이 언급한 오즈의 영화라 그들이 남긴 글만 열심히 봐도 오즈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오즈의 영화는 보면 볼수록 이상한 쪽(?)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영화다.

영화 <꽁치의 맛> 포스터

오즈의 작품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동경이야기>(1953)로 처음 봤을 때 인상은, 1970년대 말 오즈의 영화를 두고 ‘일본인의 생활양식과 근대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했던 평자들의 인식과 비슷했다. 그렇게 오즈의 영화를 본다면 다다미숏은 다다미방에 앉아서 생활하는 일본인들의 눈높이를 반영한 촬영이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다하지만, 그렇다면 180도 가상선의 무시, 끊임없이 빈 공간을 비추는 오즈의 카메라는 무엇일까. 구태여 영화를 ‘해석’하면서 볼 필요까지는 없지만 오즈의 영화는 볼 때마다 미스터리를 남긴다.

지난 13일, 오즈 야스지로 아카이브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즈의 유작 <꽁치의 맛>(1962)을 보았다. 그런데 영화를 본 이후에도 왜 이 영화의 제목이 <꽁치의 맛>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간된 오즈의 산문/각본집의 제목 또한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이다. 그 놈의 꽁치가 뭐길래, 오즈의 유작과 그가 남긴 산문집의 제목에까지 들어간 것일까.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에 수록된 글 중 중일전쟁 참전 당시 오즈가 쓴 글 중에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란 대목이 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책 제목을 차용한 것 같기는 한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서 꽁치가 먹고 싶다니. 물론 그 뒤에 오즈가 지인들에게 쓴 편지, 일기를 보면 꽁치 외에도 먹고 싶어하는 수많은 음식들이 거론되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꽁치가 기억에 남은 것은 아무래도 오즈가 남긴 마지막 영화 제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즈 영화 해석에 있어 절대적인 권위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내러티브를 좇아 영화를 보는 것을 경계했지만, 내러티브를 따라 <꽁치의 맛>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공장 간부로 일하는 히라야마(류 치슈 분)는 친구로부터 딸 미치코(이와시타 시마 분)의 중매 제안을 받지만, 아직 딸을 결혼시킬 마음이 없는 히라야마는 완곡히 거절한다. 며칠 뒤 중학교 동창들과의 반창회에서 중학교 시절 은사를 모시고 술자리를 가진 히라야마는 술에 취한 은사를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던 중, 아버지를 부양한다고 혼기를 놓쳐 외롭게 지내는 은사의 딸과 마주치게 된다. 그 때부터 미치코가 은사의 딸처럼 결혼할 때를 놓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히라야마 주위를 감돌기 시작한다.

영화 <꽁치의 맛> 스틸컷

오즈가 남긴 54편 영화중에서 후기작에 속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꽁치의 맛>과 비슷하게 전개된다. 결혼을 앞둔 딸과 그녀의 결혼을 대하는 부모 이야기. 놀랍게도 오즈는 1963년 암으로 숨을 거둔 육십 평생,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즈가 영화에서 다루는 소재의 대부분은 가족, 결혼, 세대 간의 갈등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오즈의 영화가 일본 내에서 상당한 저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일본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태양족’ 영화, 60년대 전후 일본을 들끓게 한 안보투쟁과 맞물린 변화의 물결 속에 지독하리만치 옛 것을 고수하는 장인의 정신은 새로움을 갈망하던 시대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었다. 일본영화사에서 잊혀지고 있던 오즈를 재발견한 것은 해외에서였고, 이러한 흐름에서 오즈의 영화를 명확히 정의한 하스미 시게히코와 하스미 덕분에 오즈를 알게 된 후대의 영화감독(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덕분이었다.

전 세계 영화사에서 오즈가 완벽히 신격화되어버린 후 오즈를 알게 된 21세기의 씨네필들은 선배 씨네필들처럼 오즈의 영화를 알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오즈 해석의 정수로 알려진 하스미 시케히코가 저술한 ‘감독 오즈 야스지로’이 있고, 또한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즈 아카이브 특별전에 맞춰 발간한 오즈 야스지로 프로그램북에 유운성, 김성욱, 이용철, 김형석 등 유명 평론가들이 쓴 오즈 영화 비평만 봐도 오즈 영화들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이미 오즈의 세계관에 대한 훌륭한 분석들이 여러 차례 나왔기에 후대의 관객들은 하스미의 당부대로 ‘영화를 보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된다.

영화 <꽁치의 맛> 스틸컷

<꽁치의 맛>은 오즈의 영화 가운데 가장 처연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즈가 남긴 마지막 영화에서 오는 감상도 크지만, 딸을 결혼시킨 후 히라야마가 느끼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한때 딸이 머물렀지만 이제는 주인 없이 텅 빈 2층 방의 전경, 그 방을 올라가는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식탁 의자에 털썩 앉는 히라야마, 류 치슈의 굽은 등은 슬프고도 애잔한 기억으로 남는다. 반자발적 각성이긴 하지만 딸의 결혼을 바랐던 만큼 그녀의 결혼은 가족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야할 것 같은데, 이제 막 딸을 출가시킨 히라야마는 외로움에 둘러싸여있다. 익숙한 풍경을 떠나보낸다는 것. 미치코와 살던 집도, 그녀가 머물던 방도 부엌도 그대로인데 미치코만 집에 없다.

작품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선보인 오즈의 영화에는 반복되는 장소와 공간, 행동이 많다. 하지만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장면이 진행된다고 한들,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매번 다르다. “없으면 없어도 될 것 같은 것이 제일 소중하다.” 오즈가 남긴 산문집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히라야마에게 딸 미치코는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의 곁을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미치코가 결혼으로 집을 떠나니 공허함을 참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즈의 영화는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고, 흘러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다.

영화 <꽁치의 맛> 스틸컷

몇 번의 결혼할 기회를 놓치고 외롭게 살고 있는 중학교 은사의 딸이 마음에 계속 걸린 히라야마는 미치코의 행복을 위해 딸의 결혼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영화의 엔딩이다. 과연 결혼이 진정한 행복을 안겨줄 것인가는 다른 물음이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꽁치의 맛>은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상실의 슬픔을 감출 수 없는 인간들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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