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해 미국 영화계를 뒤흔든 성폭력 폭로 캠페인 '미투(#Me Too)'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의 검은드레스 물결로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수상 후보자를 포함한 주요 참석자 대부분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지난해 미국 영화계를 뒤흔든 '미투' 캠페인이 '타임즈 업'이라는 성폭력 공동대응 조직으로 결실을 맺어 첫 공식활동을 벌인 것이다.
 
'검은 물결'의 골든글로브…'미투 캠페인' [AP=연합뉴스]
미투 캠페인은 미국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이스틴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배우들이 피해사실을 폭로하며 촉발됐다. 하비 와이스틴 성추문 사건 이후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지난해 10월 15일 SNS에서 '나도 그렇다'는 의미의 'Me Too'에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자는 운동을 제안했고, 이를 시작으로 '미투' 캠페인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미국 '타임'지는 2017년 올해의 인물로 '미투' 캠페인에 참여한 여성들을 선정하기도 했다.
 
'타임즈 업(Time's up)'은 '미투' 캠페인의 결실이다. 메릴 스트립, 리즈 위더스푼, 제니퍼 애니스톤, 나탈리 포트만 등 영화·TV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3백여 명의 여성들로 결성된 '타임즈 업'은 미국 전역의 직장 내 성폭력·성차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갈 방침이다. '폭로'에 그쳤던 '미투' 캠페인이 대책을 마련하는 '타임즈 업'으로 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에서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되면서 온라인을 통해 성범죄 피해사실 폭로가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지만 '미투'나 '타임즈 업'만큼의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장자연 사건, 김기덕 사건, 한샘 성폭행 사건 등 폭로 이후 피의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같은 사례가 반복될수록 피해자들의 폭로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8일 JTBC <뉴스룸>은 '장자연 사건' 수사기록을 입수해 단독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사건 당시 검찰은 이른바 '장자연 문건' 사본을 확보한 상태였다. 고 장자연 씨는 '장자연 문건'에 자신의 소속사 대표 김모 씨로부터 술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과 술자리 참석 인물, 구체적인 장소까지 기재했지만 검찰은 김 씨에 대한 '강요죄'와 참석자에 대한 '강요방조죄'에 대해 불기소를 결정했다.
 
[단독] '장자연 사건' 수사기록 입수…곳곳 술 접대 강요 정황 (JTBC 뉴스룸 보도영상 갈무리)
검찰은 장 씨와 같이 술자리에 불려간 윤모 씨의 "김씨 폭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계약을 어기면 지불해야 할 위약금 1억 원도 부담됐다"는 진술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윤 씨는 추가적으로 2008년 8월 소속사 대표 김 씨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 장 씨를 정치인 A씨가 성추행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이 역시 검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비 와이스틴 사례와 유사한 이른바 '김기덕 사건'도 폭행에 대한 부분만 약식기소 처리됐을 뿐 성추행 관련 부분은 불기소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여배우 B씨는 김기덕 감독이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당시 자신의 뺨을 수차례 때리고 베드신을 강요했다며 김 감독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폭행 혐의만 인정해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여배우 B씨의 변호인 서혜진 변호사는 지난달 14일 김기덕 감독에 대한 검찰 약식 기소 및 불기소 처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피고소인 강요 행위의 대부분 증거는 피고소인 측이 갖고 있었고, 시일이 많이 흘러 수사기관이 이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참고인들은 대부분 현장 스태프 등 김기덕 감독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로 영화계 권력을 가진 감독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당사자인 B씨는 "세계적 배우들이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며 "저 같이 힘 없는 배우로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권력에서 벗어나 '미투'를 외치기는 어렵다.
 
직장 동료와 상사로부터 연쇄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한샘 성폭행 사건' 역시 피의자는 불기소 처분됐고 여직원은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여직원의 변호인 김상균 변호사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여직원은 자신의 당한 일을 알리기 전부터 한샘 내 퍼진 소문 탓에 심적으로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꽃뱀론'으로 직장 내에서 고립된 여직원이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미투'를 외치기는 어렵다. 최소한 피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부실수사가 근절되고,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야만 한다. 더불어 각 분야의 어른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 때 연대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다.
 
메릴스트립을 비롯한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과 제작자들은 '타임즈업' 조직 과정에서 기금조성을 위해 수 억원의 금액 기부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의 기부로 시작된 '타임즈업'의 기금액은 현재 1300만 달러(약 139억원)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블랙드레스를 입고 발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들에게서 연대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9년 4월 18일 <“성폭력 가해자 김기덕, 연이은 ‘역고소’로 피해자 위축시켜>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3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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