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MBC <뉴 하트>의 한장면이다.

또 한편의 의학드라마가 나왔다. 이번에도 배경은 흉부외과. 초를 다투는 수술이 있으니 긴장감이 있고, 생명을 구하려는 의사들이 나오니 가운만 입고 나와도 멋지다.

예전처럼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도 아니다. 병원 안에서 충돌하는 다양한 권력들을 맛볼 수 있다. 수술장면들은 제법 그럴듯하고, 의학용어 술술 풀어내는 연기자들은 뭔가 달라보인다.

딱 하나 없는게 있다. 바로 환자이야기. 그들은 언제나 누워만 있다. 가끔 사연있는 환자들도 등장하나 그것은 의사들의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어줄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흉부외과에 입원한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MBC <하얀거탑>, SBS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MBC <뉴 하트>로 이어지는 의학드라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CPR(심폐소생술)처럼 아는 용어 자주 나온다고 좋아할까?

마침 그 당시 국내최고병원 흉부외과와 지방종합병원 흉부외과에서 만1년이상 보호자 생활을 했던 필자의 경험을 더듬어봤다. 병원비를 위해 집을 판다거나, 간호를 위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얘기 등은 제외했다.

일단 지방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를 받는다. 검사로 환자가 진을 다 뺄때쯤되면 수술을 어디서 할지 결정하라는 병원측의 통보가 온다. <뉴 하트>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심장이나 폐수술가능한 지방 병원이 턱없이 적다. 결국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향햔다.

여기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원할 때' 입원할 수 있는 환자가 되려면 엄청난 행운이 필요하다. 그 과정도 운이 없으면 끝도 없이 복잡하지만 일단 여기서 멈추겠다.

입원했다는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검사가 시작된다. 했던 검사는 현재와 비교하기 위해 다시 하고, 안 했던 검사는 안 했으니까 한다. 보호자 동의서를 수도 없이 쓴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가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례도 목격했다.

그래서 수술.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할 정도단계까지 왔다면 대부분 환자의 상태는 최악이다. 역시 <뉴 하트>에서 일부 언급됐듯이 대형병원이 사망률이 높다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된다. 그러니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 오래 머무르는 환자들이 많다.

여기서부터가 병원이야기가 본격화된다. 의사들만 그렇게 분초를 다투는게 아니다.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언제 올지 모를 보호자 호출을 대비해 다들 대기실에서 밤을 샌다. 불편한 의자에서 밤을 새며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대기실에 전화벨이 울리면 단체로 잠을 깬다. 본인의 이름이 불려지면 불려서 놀라고, 본인의 이름이 아니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불안하다.

그곳에서 먹고 자는 것은 당연하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을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셈이다. 며칠만 지나면 친해져서 각 환자들 집안 사정까지 훤하게 꿰뚫는다. 어김없이 매일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도 봐야 한다.

병실에 올라가면? 드라마에 나오는 병실처럼 우아하게 1인실에서 간호받는 환자는 거의 없다. 일단 2인실에 주로 배치된다. 이때 환자는 6인실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당연하다. 입원비가 천지차이다. 6인실에 자리가 비면 선착순으로 2인실 환자를 옮겨준다. 일부 대학병원은 6인실 경쟁이 너무 치열해 일정 기간이상 6인실에 일정기간 이상 입원하지 못하는 제도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보호자는 어디서 잘까? 당연히 간이침대다. 하루종일 그곳에서 먹고 자야 한다. 환자야 병원밥이라도 나오지만 보호자는 그럴 수도 없다. 병원식에 친척들이 공수해온 반찬을 곁들이고, 매점에서 전자렌지에 데워먹는 밥을 사다 먹는다. 샤워는 어디서 하고, 옷은 어디서 갈아입을까? 모두 화장실이다. 아침이면 화장실을 빨리 차지해야 하루가 수월해진다.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여기서 또 한번 경쟁이 시작된다. 입소문이 난 간병인들을 따로 찾아내야 한다.

간병비가 노동강도에 비해 너무 적은게 사실이다. 그러니 지원자가 매우 적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비 내기도 힘든데 간병비를 마구 올려줄수도 없다. 그건 간병관련협회에서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환자가족이 원하는 나이나 경력의 간병인을 만나기가 힘들다. 막상 간병을 고용하고 보면 환자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환자 상태가 많이 나쁠경우 힘들다고 그만 둬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여성 간병인이 대부분이다 보니 남성 환자들은 불편해 한다.

이 시간들을 견디며 일단 '외과'에서 먼저 지낸다. 의사? 오전 회진, 오후 회진. 그렇게 하루에 두번 보면 다행이다.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수술은 참 잘 됐습니다."

수술은 다 잘됐고,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도 어쩔수 없는 자연발생적 상황이란다. 의료소송에 빌미가 될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걸 다 참아내며 회복이 조금 되고 나면 내과로 보내진다. 내과에서도 물론 환자와 보호자는 같은 생활을 반복한다. 의사도 같은 말을 한다.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수술은 참 잘 됐습니다. 많이 나아지셨어요."

그리고 밥을 환자 스스로 먹을 때 쯤이면 바로 퇴원이다. 서울에 있는 큰 흉부외과 병원에서 완전히 회복되고 내려가겠다는 건 꿈이다. 대기 환자가 수십명이다.

여기서 중환자실, 외과, 내과를 거쳤다. 그 말은 담당 의사, 담당 레지던트, 담당 인턴이 계속 바뀐다는 말이다. 혹시나 장기입원을 했다면 배로 들어날 수 있다. 인턴이나 레지던트 교체시기와 맞물리면 그들에게 각각 환자상태 설명하느라 세월을 다 보낸다.

그리고 별의별 환자들이 다 있다. 왕년에 잘 나갔던 환자들이 제일 문제다. 전직 국회의원들이 가장 가관이다. 병원에서도 국회의원 대우를 바라는 그들은 자신들을 같은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보호자들에게도 그런 대접을 요구해 꼭 싸움이 일어난다.

다시 지방병원에 마지막으로 입원한다. 환자상태 다시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병원 흉부외과의 상태들은 정말 <뉴 하트>에서 묘사했던 것 처럼 심각하다. 경험이 풍부한 의사도 적고, 간호사 자체도 부족하다. 그 곳에서 완전히 회복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일단 완전회복된 상태로 내려온 것도 아니며, 서울에서 수술 받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환자라면 악화될 확률이 더 높다. 처음부터 서울에 살아서 이 과정이 줄어든 환자들이 부럽기만 하다. 다시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간다.

구질구질해서 굳이 드라마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그걸 잘 풀어내는 게 드라마이지 않는가. 혹은 의사이야기가 아니면 병원에서 장소협조를 해주지 않는가? 수술실 세트 만드는데 엄청난 돈을 쓰고 있지 않는가.

흉부외과 의사심정 이해하고 감지덕지하며 치료를 받으라는 말일까? 하루에 3분이상 얼굴보기도 힘든 의사들. 만날 같은 말만 하는 의사들이 드라마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묘사되는 것을 보며 환자들은 기가 더 죽었다. 아니, 기가 막혀 채널을 돌렸다.

의사들의 사명감 충분히 이해 했다. 고생하는 것도 안다. 생명을 지켜줘서 고맙다. 하지만 만들만큼 만들지 않았나.

의사는 카메오로만 출연해도 충분히 병원드라마 만들 수 있다. 발상을 전환하자. 간호사들이나 청소해 주는 직원들을 오히려 몇십배 자주 본다.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보고,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의학드라마에서 보고 싶다. 의료용어 좀 틀리면 어떤가? 제발 의학자문은 의사한테만 받지 말고, 환자나 환자 가족들에게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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