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멀리 떨어진 은하 파파러웨이에서 벌어진 선악 세력의 끝나지 않는 싸움, 스타워즈. 1977년 시리즈가 시작된 이래 하나의 시리즈 영화를 넘어 문화적 코드이자 전설이 되었다. 애초 조지 루카스 감독에 의해 9부작으로 기획되었다던 이 시리즈는 1999년부터 다시 시작된 프리퀼 시리즈 세 편을 통해 전설의 시작을 훑어본 후, 2015년 <깨어난 포스>로 다스베이더의 죽음 후 30년 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악을 주체적으로 수행해내던, 그러나 그 악을 응징하기 위해 검을 들었던 루크에게 충격적인 'I'm your father' 출생의 비극을 알려주었던 실질적인 시리즈의 주체였던 다스베이더. 그의 죽음은 결국 스타워즈였던 전설의 주체적 동력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30년 후, 악의 주체는 사라진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 세력을 강화해 '퍼스트 오더'가 은하계를 장악하고 다스베이더에 필적할만한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분)이 등장했으며, 마지막 제다이였던 루크는 사라졌다.

악이 횡행하고 전설이 사라진 세상, 그 악의 시대에 저항의 불씨는 루크의 쌍둥이 여동생인 레이아 공주와 그녀를 따르는 레지스탕스 저항군으로부터 지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저항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마지막 제다이였던 루크 찾기에 고심하고, 이 루크를 찾는 여정에서 반가운 한 솔로의 복귀와 함께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 핀(존 보예가 분), 포(오스카 아이삭 분) 등 새로운 전설의 후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전설의 지양: 살부(殺父) 신화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포스터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점을 몇 줄의 말로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운명으로 정해진 '포스'를 지닌 정의의 기사 제다이와 그 맞은편에 악의 세력 시스가 있다. 이들은 은하계를 두고 끝이 없는 선과 악의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 전쟁의 가운데에는 포스를 지닌 가문, 가족의 비극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정의의 제다이가 되어 악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루크. 그런데 바로 그 루크가 제거하려 했던 악의 주구가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는 비극적 혈연사야말로, 선과 악의 미묘하고도 비극적인 운명으로 <스타워즈>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그리고 제다이의 영웅적 활약상과 이 비극적 가족사는 <스타워즈> 전설의 요체가 된다. 그리고 이제 30년 후 새로이 시작된 시리즈는 바로 이 전설의 ‘지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흔히 지양이라고 하면 ‘없앤다, 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양(止陽)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아우프헤벤(aufheben)'을 뜻하며, 여기에는 '폐지한다, 유지한다, 고양된다'의 의미가 담겨 있다. 즉 하나의 테제가 안티테제가 되는 과정에서, 테제 그 자체가 사라져서도 안 되며, 그 성질이 유지되면서도 동시에 다른 것과 만나 자신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단계로 고양되는 나선형의 발전 과정이다.

스타워즈는 포스를 지닌 '제다이'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는 마지막 제다이였던 루크가 있다. 하지만, 이미 하나의 완결된 시리즈를 지난 루크는 전설의 제다이가 되었지만, 그것은 시리즈의 상징인 동시에 시리즈를 이어가는 데 가장 큰 부담이 된다. 30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그 영광의 후광, 그 후광을 <스타워즈>는 제다이 마스터로서 루크가 키워낸 또 다른 비극적 가족사 '카일로 렌'을 통해 '제다이 전설'의 종말을 설득하고자 한다.

결국 어둠의 하수인이 된 아버지 다스베이더를 '지양'하는 서사가 된 1977년으로부터 시작된 시리즈. 그리고 당당하게 라스트 제다이로 전설의 자리에 서게 된 루크. 하지만 그가 쌍둥이 여동생을 설득하여 키워낸 자신과 같은 포스를 지닌 조카 '카일로 렌', 그러나 루크는 그에게서 발하는 '어둠의 포스'를 두려워하며 결국 그를 시스의 손에 넘겨주고 만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틸 이미지

30년 후 강력한 '포스'를 지닌 두 인물 샤일로 렌과,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에 필적했던 레이의 캐릭터는 흡사 <해리포터> 속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고뇌하는 소년 해리와도 같다. 즉 아직 선과 악으로 자신의 편을 정했지만, 그 어느 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계에 선 성장기의 인물. 그러나 루크는 렌에 잠재되어 있는 악의 포스에 '예단'을 하여 렌을 제거하려 했고, 이는 렌의 트라우마이자 그를 악의 편에 서도록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만다. 하지만 루크를 찾아가 수련을 받고자 했던 레이 역시 그것이 시스의 조작된 의도였을망정 렌과 교감을 나눌 만큼 모호한 경계의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살부'의 의식을 치른다. 렌은 이미 앞선 <깨어난 포스>에서 자신의 악을 증명하기 위해 친부 한솔로를 죽인 바 있으며, 이제 그 반대로 <라스트 제다이>에선 그의 정체성의 근간이었던 사스의 주구 스노크를 스스로 제거한다.

반면, 루크를 찾아가 가르침을 간청하는 레이. 하지만, 이미 렌의 경험을 통해 제다이로서의 훈련의 의미, 아니 더 나아가 '제다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된 루크는 그런 레이의 요청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녀의 용기에 마음을 돌린 루크는 그녀에게 세 가지 가르침을 전한다. 그 가르침의 끝에는 렌과의 교감 속에서 혼란을 겪던 레이가 스스로 선한 포스를 가진 자신의 길을 선택하듯,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 몇 남지 않은 레지스탕스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루크 스스로 렌이 지휘하는 '퍼스트 오더' 군과의 전투에서 산화하며 젊은 포스들의 거름이 된다.

이는, 서양 고전신화에서 아버지를 지양하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성장서사의 얼개를 그대로 번복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비와 적이 되어 싸우며 악에 물든 아비 다스베이더를 극복하고 전설이 된 제다이 루크는,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스스로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터주며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제다이 루크의 전설 시리즈는 이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스타워즈'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제다이의 지양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틸 이미지

루크가 좌절한 것처럼, 루크에 의해 제다이로 선택받은 자였던 렌은 그 스스로 '시스'의 지도자 스노크를 제거하지만, 제거한 이후의 선택은 그 스스로 '퍼스트 오더'의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선택받은 제다이로 훈련받은 자의 일그러진 선택, 레아 공주와 한솔로의 아들, 루크의 조카이자 선택받은 제다이였던 렌의 실패는, 앞서 다스베이더가 연상되며 루크의 선택받은 기사, 제다이에 대한 회의론으로 귀결된다. 아니 부제 '라스트 제다이'처럼 루크로 마무리된, 제다이의 역사가 '지양'된다. 루크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켜 새로운 시대를 연다.

대신 누구의 딸인지도 모르는, 아니 알 필요조차 없는, 선택받지 않은 자쿠 행성 출신의 레이. 훈련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렌에 필적할만한 '포스'를 드러내었던, 선과 악의 경계에서 스스로 굳건하게 선의 자리에 선, 보잘 것 없는 출신의 여성이 악에 대항하는 세력의 중심인물로 부상하는 <스타워즈>의 설정은 그녀와 함께하는 레지스탕스의 흑인 핀, 그리고 이번 시리즈에 그의 조력자로 등장한 동양인 켈리 마리 트랜과 함께 또 다른 전설의 '탄생'을 알린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라스트 제다이' 루크의 산화와 함께 이제 더는 의지할 전설도 없이 지원군조차 없는 초라한 일행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퍼스트 오더에 굴하지 않는 '선의 행군'을 떠나며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틸 이미지

전설을 지양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준비해야 하는 이 야심찬 시도는 그 덕분에 때로는 <해리 포터>인 듯, 혹은 때로는 <반지의 제왕>인 듯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와 절대 악, 그 혼돈 속에서 궁극적 여정을 떠나는 일군의 동행을 구축해가며 '장황한 새 시대'의 서사를 연다. 덕분에 그 풍성하다 못해 구구절절한 새 시대의 도입부는, 한편에서는 말 그대로 별들의 전쟁을 기대했던 화려한 액션의 구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다음 시리즈를 위함이라지만 새로운 파트너십을 선보인 핀과 로즈가 어렵사리 적진에 침투하고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잡히는 그 순간에는 실소가 나오고 만다. 아직 완전체가 되지 못한 주인공들은 매번 스스로의 싸움을 주도하지 못한다.

이렇듯 성장의 서사는 간곡했지만, 마치 2차 대전의 우주 버전과도 같은 전투의 장면들은 전설로 탄생할 주인공들의 본격적인 활약이 될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로 남겨둬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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